2013년 2월 3일 일요일

한 장의 단풍잎새에는

가을날 오후
그네처럼 흔들리는 햇살에
나뭇가지에서 막 지는 한 장의 단풍잎새에는
당신의 대추빛 붉은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 아래 하단전에서 끌어올린 기가
상단전에 충만히 모여있으나
다시금 조용히 비워내는 내공이 느껴집니다
깊고 고요한 당신의 눈동자에는
하늘 연못 가득 찰랑거립니다
오랜 세월 내 안의 오솔길을 혼자 걸어온
당신의 가을숲에는 빨강 노랑 갈항 단풍잎 가득 쌓이고
지나가는 청솔다람쥐 발자국 소리에도
쫑긋 온몸 부서지는 아름다움이 쌓여갑니다
이 나라 강과 숲 미풍과 햇살과 소나기와 폭양을
두루 겪으며 스스로 수련해온 청년단풍이
저녁노을빛에 온 몸을 물들이기 시작하더니
가을 하늘을 떠안고 힘들어하던 단풍잎새가
한 잎 질 때 마다 그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뛰놀던 꽃과 새와 꽃노루가
가을숲 바깥으로 조용히 사라져갑니다
가을산을 짐지고 쓰러질 것 같던 단풍잎새가
한 잎 질 때 마다 그 곳에서
동서남북 아침 저녁 알리던 해와 달이
슬그머니 개울 저 편으로 사라져갑니다
한 장의 단풍잎새 잎맥 사이에는
당신이 오시는 봄날 개울이 그려져 있고
당신이 가시는 가을날 오솔길이
미리 그려져 있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