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토광

곯는 젖배를 문대며 엉금엉금 기어가
식혜 항아리 쉰 밥알을 멍울멍울 빨아먹던 곳
거미가 실 끝에 묻혀오는 몇 톨의 달빛과
짠지처럼 푹 삭은 그늘이 살고있던 곳
나는 그 시큼한 그늘을 핥으며 배를 채우곤 했다
그 그늘은 내 창자까지 밀려들어와 휘젓곤 했다
할머니의 손톱과 앞치마에서 한참을 놀았던
고추, 마늘, 곶감, 고욤, 감잎, 말린 국화꽃잎 등이
푸대, 상자, 광주리, 그릇 등의 子宮 속에
들어와 살던 곳
써늘한 바람이 드나들던 뙤창으로
어느 날 능구렁이 두 마리가 들어왔는데
이틀 간의 정사를 끝내고
핏빛 비린내만 남기고 바람벽으로 사라진 곳
나는 내 긴 창자를 꺼내 풀어놓고 싶었다
겨울잠 자는 구렁이 비늘 같은 폭설의 언어가
대지 위로 곤한 목숨 내리고 있는 날
나는 토광에 빨려들 듯 들어가 귀두에 피가 나도록
격렬한 수음을 즐겼다
밀실의 어둠을 다 빨아 마시었다
흙바닥엔 情蟲이 눈발의 힘으로 질펀하게 돌아다녔다
그곳은 어쩌면 어머니의 깊은 子宮에 착상하기 전
나의 전생이 머물던 아버지의 불알 속 宮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