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9일 화요일

나태주의 ´집´ 외


<집 시모음> 나태주의 ´집´ 외

+ 집

얼마나 떠나기 싫었던가!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던가!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이 기다리는 곳

여기,
바로 여기.
(나태주·시인, 1945-)
+ 집 한 채

집을 짓고 싶었다
소똥냄새 알싸한 시골
그 어디쯤에,
사투리 툭툭 불거지는
흙벽을 두르고
한 계절 바르게 자란 짚으로
지붕을 엮어
그 위로 박 넝쿨 너덧,
순하게 올리면
인정이 담 너머에도 보이는
그런 집 한 채,
집을 짓고 싶었다
모처럼 고향집에 들리듯
잠시 신발을 벗고 누우면
스르르 눈이 감기는.
(정구찬·시인)
+ 영역

산기슭 집을 샀더니 산이 딸려 왔다
산에 오소리 발자국 나있고
쪽제비가 헤집고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제비꽃 붓꽃 산나리 피고
멀리 천국에 사는 아기들이 소풍 와서는 똥을 싸고 갔는지
여기 저기 애기똥풀꽃 피고
떡갈나무는 까치부부가 독채를 들었다
풀섶에선 사마귀 둘이 덜컥덜컥 턱을 부딪히며 싸우는데
허 나도 질세라
집 있는 데서 오십 보 백 보는 더 걸어나가서
오줌이라도 누고 오고 그러는 것이다
(신현정·시인, 1948-)
+ 집이 없는 집

불나서 집 다 태우고
다시 집을 짓고
어머니 아버지 새 집으로 들어가셨다
주방에서 화장실까지 한 걸음인 새 집에서
또 걱정이다
헛간 하나 없는 집이
무슨 사람 사는 집이냐고
옥상 위에 작은 비닐하우스 하나 지어 달랜다
땡땡 내리쬐는 햇살 쉬어가는 집
가을에서 새 봄까지
겨우내 숨 고르며 누워있을
서리콩에서 들깨까지 묵을 수 있는 집 한 채
바깥세상 내다보며 사나흘
밤새우며 거처할 이불 빨래까지 편히 쉬는
집 같은 집
(조성식·시인, 1967-)
+ 마음으로 지은 집

잘 지어진 집에 비나 바람이 새어들지 않듯이
웃는 얼굴과 고운 말씨로 벽을 만들고

성실과 노력으로 든든한 기둥을 삼고,
겸손과 인내로 따뜻한 바닥을 삼고,

베풂과 나눔으로 창문을 널찍하게 내고,
지혜와 사랑으로 마음의 지붕을
잘 이은 사람은 어떤 번뇌나 어려움도
그 마음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한정되고 유한한 공간에 집을 크게 짓고
어리석은 부자로 살기보다
무한정의 공간에 영원한 마음의 집을
튼튼히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작자 미상)
+ 따뜻한 집·1

언덕 위 집이
네 번째 무너졌다

민들레 개비름 자옥한
언덕

저물 무렵이면 남루의 풀잎들
넉넉한 황혼물에 발 씻고 누워
피브이시 굴뚝의 온기
십자가처럼 경배하던

언덕 위


허가도 없이
사람이 살더니.
(안성길·시인, 울산 출생)
+ 만철이네 제비집

보성 사는 만철이네 집에 간 날
오랜만에 제비집을 보고 왔다

제비들은 마실 나갔는지
처마 밑 제비집은 텅 비어 있고
풀꽃들 우거진 마당에서
제비새끼 같은 아이들만 놀고 있었다

여덟 살, 열 살 먹은 그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들에서 산에서 제비처럼 산단다

삼년을 손수 흙 이기고 발라 지었다는
제비집 같은 만철이네 흙집

전기불도 그 흔한 보일러도 없이
그저 촛불 밝혀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산다는
만철이네 처마 밑에는 그가 쓴 시처럼
적막한 제비집 한 채 오롯하였다
(김경윤·시인, 1957-)
+ 저 집

저 언덕 지나가는 길에 집이 있었네
허리 굽은 등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집
저녁 여섯 시면 할머니 삐그덕 문을 열고 나와
혼자 쌀을 일던 집
깊은 우물처럼 마당이 보이는 집
여름 내내 큰딸 같은 해바라기가 담장 위에 서 있던 집
이따금 연탄재를 버리려고 문 밖에 나왔다가
이마에 손을 얹고 뒤돌아보는 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너무나 고요해 숨이 다 막히는
저 집에서 불도 켜지 않고
진종일 할머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저 언덕 지나가는 길에 저 집
내 마음속에도 들어 있는 저 집
언제나 그 속에서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납골당(納骨堂) 같은
(권대웅·시인, 1962-)
+ 이 집을 위한 기도

어떤 해악한 일도 이 집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소서.
불길한 일이 이 집 창문 틈을 결코
엿보지 못하게 하시고, 천둥과 소나기가
이 집을 피해가게 하소서.

믿음의 담력에 찬 서까래들이
폭풍의 난타를 이겨내게 하시고
온 세상이 싸늘해진다 하여도
이 집 난로만은 가족을 따뜻이 지키게 하소서.

화평이 이 방 저 방을 사뿐히 걸어 다니면서
가족들의 입술을 정결한 포도주로 적시게 하시어
마침내는 무심하던 집안 구석마다
성소로 피어나게 하소서.

웃음소리로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보호 벽이 비록 얇기는 하여도
그것이 미움을 들이지 않고 사랑을 붙들어 주는
튼튼한 방패가 되게 하소서.
(루이스 운터마이어)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나는 주렸으니´ 외 "> 양전형의 ´찔레꽃 사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