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3일 일요일

박태강의 ´현충원에서´ 외


<현충일 특집 시 모음> 박태강의 ´현충원에서´ 외

+ 현충원에서

사랑하는 부모형제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두고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꽃다운 청춘
눈물겨운 나이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치신 님

그 충성
그 젊음
영원하여라

햇빛 따스한 양지에
하나의 돌이 되어 계신 님
민족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리라.
(박태강·시인, 1941-)
+ 유월의 하늘과 산

유월의 하늘이
높고 푸른 것은

유월의 산과 들이
초록빛 숲 우거진 것은

6.25 한국전쟁 때
나라와 겨레 위해
목숨 바치신

국군용사들의
뜨거운 나라 사랑 정신이

지금도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래요.

빗발치는 적군 포탄이
불바다 이루어도

용감하게 싸우다 돌아가신
옛 전우들을
생각하시는 할아버지

유월이 오면
오늘도 남몰래
눈물 흘리십니다.
(진호섭·아동문학가, 1948-)
+ 임의 유월

그날은
유월의 붉은 꽃잎이
발아래 뒹굴고 붉은 피가 되어
바람에 피비린내로 불어왔습니다.

오늘은
장미의 붉은 꽃잎이
님 모습으로 그리움 되어
사무치는 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고귀하심은
단상에 하얀 국화꽃으로
영원히 조국에 살아 함께하십니다.

그날의
비극의 소리
동토의 가슴에 묻힌 지 오래고
조국은 잔인하리만큼 평화롭습니다.

오늘은
편이 쉬소서.
하얀 국화꽃처럼 환한 햇살 되어
그 고귀하심이 즐겁게 우리에게 게십니다.
(이영균·시인, 1954-)
+ 국군 포로

조국!
그 위대한 이름 앞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젊은 꽃들이여

전장의 포화 속에서
장렬히 전사한 영령이라고
해마다
충혼의 묘비 앞에
술잔을 올려 왔건만.

이제 망각의 세월은
반세기가 가고
전장의 상처도 잊혀져 가는데.

산화한 저 젊은 넋은
살아 있는 노병이 되어
황혼의 삶을 망향의 통곡으로
몸부림치고 있다니.

조국이여!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적 아닌 적의 손에 잡혀 간
저 늙은 병사를 어찌 하려는가!

북녘의 동토 위에 버려진
늙은 병사의 눈물을
조국이여!
어찌 닦아주려는가!

오늘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호젓이 서 있는
살아있는 용사의 차가운 묘비.

조국은

살아있는 용사에게
묘비를 선물하였는가.
(최해춘·시인)
+ 기(旗)의 의미

검은 구름 속
까마귀의 검은 울음,
할딱거리는 깃발들이 거기서
견장과 훈장을 뿌리고 있었다.

발음이 어색한 조국의 하늘은
땅에서 추방된 깃발의 식민지였다.
굳어진 공중에 까마귀 수만큼
기의 종류가 많기도 했다.
기가 너무 많아서 병든 세기(世紀)

별은 차갑고
무기는 뜨겁고
소음에 마취된 젊은이들은
가장 정확하게 꿈을 죽이는
사정(射程) 측정에 익숙했었다.

의미의 시체 위에
역사의 탄피들. 이제
찢어진 상징이 다시 높이 거만하다.
저들은 실상 저렇게
찢어지도록 누구를 사랑해 봤을까?

검은 바람과 날개의 위장
전쟁은 어차피 제복이거나 기호였다.
너 깃발. 오직
미친 미망인의 소매라 하자.
(고원·재미동포 시인, 1925-2008)
+ 순간의 평화

잔뜩 부푼 풍선이 아이의 손에 들려온다
육이오 전쟁을 치른
퇴역한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원을 평화롭게 넘실거린다
아이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은 어미뿐이다
아이의 아비는 보이지 않는다
넘실거리던 아이의 풍선이 비행기 날개에 걸려
흔적도 없이 터져 산산이 흩어진다
아이는 운다
공원에 봄꽃이 만발해 있지만
비둘기 떼가 아이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지만
어미가 아이를 달래고 있지만
아이는 운다
비행기를 몰고 전쟁을 치르느라
아이 곁을 떠났던 아비
풍선을 만들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 서러운 아이의 울음을
당장 그치게 할 수 있는 그 부푼 풍선을,
(정세훈·시인, 1955-)
+ 무기의 의미·2

가장 날카로운 칼과
가장 날카로운 告白은
다르지 않다.

가장 날카로운 칼은
그 칼날에
그리하여 저의 낯을 비춰 본다.

그리하여
가장 날카로운 칼은
꽃잎 앞에도 무릎을 꿇고,
그 꽃잎은
그 칼을 쥔 손목에
입을 맞춘다.

그리하여
칼집 속에
칼을 잠들게 하고서
우리는 勝利를 얻는다.

밤이슬에 녹슬지 않는 그 빛나는
이름으로
우리는 누구의 勝利도 아닌...... .
(김현승·시인, 1913-1975)
+ 풀에도 남북이 있는가

풀에도 남북
바람에도 남북
구름에도 남북
다람쥐에게, 노루에게, 사슴에게, 늑대와 호랑이에게도 남북이 있는가
양파에게도 남북의 대립이 있는가
흙에게도 남북 사이의 전쟁이 있는가
총에게도 이데올로기가 있는가
이데올로기 대결이 있는가
철조망의 쇠는 이데올로기를 의식하고 있는가
물에게도
새와 벌레에게도 있는가
없다
없다면 큰일이다
우리 모두가 천치 바보라는 증명이기 때문에.
(김지하·시인)
+ 평화나누기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

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일을 더 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좀더 친절하고 더 잘 나누며 예의를 지키는 것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
총과 폭탄 앞에서도 온유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 가는 것
(박노해·시인, 1958-)
+ 김치찌개 평화론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추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곽재구·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