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6일 토요일
´아내에게´ 외
<정연복 시인 아내 시 모음> ´아내에게´ 외
+ 아내에게
이 세상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우리 둘
당신과 내가 사랑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도 오래
처음에는 우리의 만남
아름다운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만남
하늘이 맺어 준 필연이라고 느낍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
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오직 당신의 존재 하나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당신을 사랑하는 이 마음
영원히 변함없기를!
+ 아내에게
죽음이 당신이나
혹은 나를 찾아와
지상에서의 우리의 사랑이
끝나는 그 날 그 순간까지
우리는 헤어지지 맙시다.
허물 많은 내 사랑
너그럽게 안아준 당신 때문에
꿈결같이 이어져 온,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기워진
나의 부족했던 사랑마저도
이별의 순간에는 어쩌면 용서되어
당신이나 내가
누구의 죽음을 먼저 대하더라도
우리는 눈물 속에
행복했던 우리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설령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이
사랑의 천국에 들기에는 부족하더라도
당신의 발에 입맞추며 행복했던
내 사랑의 추억은
하나님이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파랑새
행복의 파랑새는
저 멀리 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나의 곁을 빙빙 맴돌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 사람
이 세상에서 나에게
밥상을 가장 많이 차려준 사람
이 세상에서 나의 안팎을
누구보다 세밀히 알고 있는 사람
내 삶의 환한 기쁨과 보람
몰래 감추고픈 슬픔과 고독의
모양과 숨결까지도 감지하는 사람
그리고 나 때문에
종종 가슴 멍드는 사람
하루의 고단한 날개를 접고
지금 내 품안에 단잠 둥지를 틀었네
작은 파랑새여
아내여
+ 아내의 초승달
아차산 야간등산
하산 길
아스라이 동녘 하늘에
초승달 하나
선녀의 눈썹인가
가늘고 길게 굽어진
저 숨막히게 예쁜 것.
늦은 귀가의 남편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아내
별빛 맑은 눈동자는
평화로이 감겨 있는데
바로 그 위에
초승달 두 개 떠 있네
만지면 사르르 부서질세라
새끼손가락 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는
한 쌍의 아미(蛾眉).
나는
행복에 겨운 나무꾼.
+ 아내의 발
어젯밤 과음으로
목이 말라
새벽녘 잠 깨어 불을 켜니
연분홍 형광 불빛 아래
홑이불 사이로
삐죽 나온 아내의 발
내 큼지막한 손으로
한 뺨 조금 더 될까
상현달 같은
새끼발가락 발톱
반달 모습의
엄지발가락 발톱
앙증맞은 그 발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아내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군데군데 제법 굳은살이 박힌
235밀리 작은 발
그 총총 걸음마다
행운과 복이 깃들이기를....
+ 꽃 - 아내를 노래함
뭇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목련이나 장미에 못지 않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상의 어느 모퉁이
이름 없는 들꽃도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것을,
활짝 핀 장미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지는 장미의 꽃잎 한 장은
더 눈물겹게 아름답다는 것을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
불타던 정열의 날은 가고
생명의 끝이 저기쯤 보이는
이 나이에 알게 되었다.
그날,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눈부셨던 신부(新婦)
그 윤기 흐르던 검은머리에
희끗희끗 눈꽃이 내려
장미의 계절을 지나 이제
들꽃의 순한 모습 닮아 가며
날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내 사랑이여
영원 불멸의 꽃이여
+ 당신 - 아내에게 부치는 시
당신이
내 곁에 없어도
당신이라는 꽃
피고 지어
당신이
이 세상에 아니 있어도
당신은
내게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맑고 선한 눈동자를 본
그날 그 순간부터
해 뜨고 노을지는 지상에서
저 아득한 영원까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당신은
내 안에 있습니다
+ 꽃잎
문득 아내가
참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친구랑 술잔을 기울이다
늦은 귀가의 밤
남편이 돌아온 줄도 모르고
이불도 내동댕이치고
이따금 코도 골며
세상 모르고 자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가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은
나 때문인 것을
한때는 꽃잎처럼 곱던
얼굴에 잔주름이 피었어도
예나 지금이나
내 눈에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다
+ 꽃잎
꽃잎 같이 짧은 생(生)의
내 가슴속에 한 잎 꽃잎 있네
피어서도 아름답지만
지고서 더욱 사무치게 아름다울
이 세상 모든 꽃잎들보다
더 소중한 하나.
이 밤 가느다란 숨결로
내 품속에 잠든,
세월의 비바람 속에
겉모습이야 낡아 가더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 눈에 더욱 어여쁜
이 세상 수많은
꽃잎들 중의 꽃잎.
먼 훗날
너의 육신이 지는 날에도
이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 있을
꽃잎이여
아내여!
+ 봄
늘 수수한
모습의 당신이기에
입술에 진한 루즈를 바르거나
손톱에 매니큐어 칠한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곤한 잠에 떨어진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 주다가
불현듯
나는 보았네
연분홍 매니큐어
곱게 칠한 너의 발톱
어쩌면 이리도 고울까
마치 꽃잎 같애
진달래처럼
라일락처럼
너의 작은 발톱마다
사뿐히 내려앉은 봄
+ 반달
내 생이
그믐달인 듯 야위어
쓸쓸함이 여울지는 날에도
나의 반쪽,
나의 영원한 사랑
반달 같은 당신 있어
허투루 눈물짓지 않으리
+ 천사
바람같이
흐르는 세월에
어느새 내 목숨의 날도
많이 야위었다.
지나온 세월
가만히 뒤돌아보니
과분하게 누린
은혜 하나 있었네.
내 고독한 영혼에
다정히 팔베개 해 준
이 세상
더없이 착한 사람.
그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나의 사랑도 손톱처럼 자라
이제는 내 생명보다도
귀하고 귀한
지상의 천사
안젤라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팔베개´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