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광전, 화엄의 세상을
날카로운 머리의 뿔로
뚫고 들어가는 흰소가 있다
들녘을 걸어가다가
푸르른 강물이 되고
산을 넘어가면서 화산이 되고
사막을 걸어가면서
빙하의 섬이 되고
마른 계곡을 걸어가면서
우물로 솟아오르는 흰소가 있다
지상의 담벼락을 폭우로 넘어뜨리고
세상의 지붕을 폭설로 내려앉히고
우주의 문짝을 폭풍으로 뜯어버리는
海印의 흰소가 있다
풀잎에 앉았다가 나비 날아가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꽃이 피고
새가 나무 위에서 둥지를 틀고
열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고
무덤에 묻히 씨가 고개를 쳐들고
어떤 목숨의 뿌리가 깊어진다
가부좌한 누군가 입적했다고
오랫동안 흰소 묶여있었던
후박나무의 굵은 허리를
사악한 톱이 뚫고 들어가더니
번뇌의 도끼에 맞아 장작이 되었다
적멸의 불꽃, 흰소가 타오른다
사멸도 없이 사리도 없이
한 줌 재의 뼈만 남았다
흰소가 사라지고 없다
마음속, 흰소를 어서 내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