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 켜진
열쇠 가게 앞 한길에
자물쇠로 굳게 닫힌
나무로 만든 궤가 있다
톱으로 잘라내고
망치로 박은 모서리마다
아직도 새벽 같은
선혈이 낭자하다
저 함 속에 내가 갇혔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빛다발에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저 관 속으로
몇 천 년의 미이라 같은
어둠이 쑤욱 빨려들어 갔을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건질까 궁금하여
수많은 어제의 달이, 별이
머리 들어밀었을 것이다
저 궤를 열어보니
사막에서 불어온 모랫바람이
겨울뱀처럼 또아리 틀고 있다
바닷물로 출렁거린다
저 궤를 다시 열어보니
녹번역이 소리치며 뛰쳐나온다
전철에서 내린 한 남자가
옆구리에 무료로 신문을 끼고
얼음 계곡으로 올라간다
저 궤를 또 열어 보니
산에서 내려온 한 여자가
폭포수처럼 녹아내린다
밟고 가는 저 궤 속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