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등에 기대어

이파리 무성할 때
저 홀로 뽐내던 나무들
피붙이 다 떠나보낸
늙은 부부의 겨울처럼
서로의 등에 기대어 사는구나
방랑의 봄을 보내고
맨발로 찾아온 해방처녀같이
방황의 가을을 보내고
빈손으로 찾아온 탕자같이
한 철 뜨거웠던 열기를
뿌리 깊이 담아두었다가
박대하지 않고 등을 내어주네
저마다 기대어 선 숲속이
불 지핀 아궁이처럼 따뜻하구나
미담美談 같은 저것을 닮겠다고
바위도 단단한 등을 건네주네
얼어붙은 냇물도
희고 투명한 등을 내밀어주네
골짜기마다 깊은 등을 열어주네
저 등에 기대어
내게 남은 한 철을 지내고 싶네
저 등을 열고 쑤욱 사라져
그대와 한 몸이 되고 싶네
내가 그대의 심장으로 뛰고 싶네
내가 그대의 뇌로 생각하고 싶네
내가 그대의 등에 기대어
펄펄 끓어오르는 된장국 같은
체온이 되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