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허동인의 ´ 어머니가 고향이다´ 외


<고향 시 모음> 허동인의 ´ 어머니가 고향이다´ 외

+ 어머니가 고향이다

´고향´ 하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 하면
고향이 생각난다.

딸자식은 다
출가시키고
아들자식은 다
객지에 나가 살고

붙박이별처럼
홀로 고향을 지키시는
우리 어머니

어릴 때 살았던
고향집이 생각날 때면,
선영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때면,

어머니가 곧 고향이다.
고향이 곧 어머니다.
(허동인·시인, 1941-2009)
+ 내 고향은

내 고향은
산, 산
그리고 쪽박샘에
늙은 소나무,
소나무 그림자.

눈이 와
눈이 쌓여
장끼는 배고파
까투리를 거느려
마을로 내리고,

눈 녹은 마당에서
듣는
솔바람 소리.

부엌에서 뒤란에서
저녁 늦게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
(나태주·시인, 1945-)
+ 고향

내 마음
나직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
지었어요.

울타리는 않겠어요.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

감나무 한 그루
심었어요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려요.


여름
가을 겨울
깊어 가는 고향집.
(김후란·시인, 1934-)
+ 고요한 귀향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 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시인, 1921-2003)
+ 고향에 대하여

꿈에도 그립던 곳
살붙이 앞세워 가니
풀벌레 목청 높여 반겨주니 좋아라

타향 객지,
빈 가슴 성묘길 보내놓고
둥근 달 소주잔 띄워
홀짝홀짝 취해도 좋아라

오늘 밤 인생살이
무거운 짐 내려놓고
영원한 본향 길
떠나가도 좋아라

육신으로 태어나 영혼으로 가는 길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가는 길
발걸음 머무는
그곳이 고향이니

얼씨구절씨구
가도 좋고
아니 가도 좋아라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고향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를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독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댁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의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곽재구·시인, 1954-)
+ 고향

하늘은 내 넋의 슬픈 고향
늙은 홀어머니의 지팽이같이
한줄기 여윈 구름이 있어
가을바람과 함께 소슬하더라.

초라한 무명옷 이슬에 적시며
이름 없는 들꽃일래 눈물지었다.
떼지어 우는 망아지 등 너머
황혼이 엷게 퍼지고
실개천 언덕에 호롱불 필 때

맑은 조약돌 두 손에 쥐고
노을을 향하여 달리어갔다.

뒷산 감나무꽃 언제 피었는지
강낭수수밭에 별이 잠기고
한 줄기 외로운 모깃불을 올리며
옷고름 적시시던 설운 뒷모습
아득―한 시절이기 더욱 그립다.

창망한 하늘가엔 나의 옛 고향이 있어
마음이 슬픈 날은 비가 내린다.
(김광균·시인, 1914-1993)
+ 그리운 고향

나에게도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
할미꽃 민들레 같은 작은 꽃들이
들판 가득 피어 웃으며 반기는

길을 걸을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다독여줄 수 있는

따뜻하고 졍겨운 시골의
소박한 미소가 있는
먼 신비의 빛의 마을 같은

명절 때면 고향을 찾아
바쁘게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만큼
서럽고 외로운 사람이
또 어디에 있으랴
(나명욱·시인, 1958-)
+ 고향집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하늘을 이고
긴 밭고랑 김을 매시며 기도를 한다.

급행열차도 서지 않는 산골마을 토담집에서
도시로 나간 큰 자식,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전히 어머니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로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은 웃음소리에
기다림의 행복으로 살고 계신다.

곡식이 익어 가는 계절의 소리
해질녘 돌아오는 작은 발소리
흙냄새 배어있는 어머니 모습
깊은 물소리 없이 흐르듯
어머니 깊은 마음은 자연만큼 편안하다.
(권영분·시인)
+ 끈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은
굵고 튼튼한 끈 하나씩은
어쩌면 끊어지지 않는 그
끈에 매달려 끌려오는지도

나도 오늘 그 끈 한 번
써어억 잡아 당겨본다

헛간 지붕 위에 박넝쿨처럼
큰박 여문박 작은박 애박에 박꽃까지
줄줄이 달려나온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먼저 간 형제는
곁에 없지만
빛이 바래진 세월 앞에도
끈은 더 굵어지고
끈에 달린 박덩이는 더 커져만 보인다.
끈, 끈
(안복수·시인, 1943-)
+ 행복

고향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 곳에
언제든지 훌쩍 다녀올 수 있으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손때 묻은 기둥과
박꽃 순결하게 피어나던 초가지붕과
숨바꼭질하던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더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친 삶의 현실에서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럼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면
당신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가는 길 고생스러워도
엎드려 절 할 수 있는 어른이 있고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있는 선영(先營)이 있다면
당신은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늑한 평화
포근한 안식으로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고향은
편안한 어머니 가슴입니다.
(강기옥·시인)
+ 누가 고향을 사랑한다던가

말로는 고향을 떠들지만
진실로 고향을 아끼는 자는 없다
보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놈이
그곳에 지금 몇이나 남아있는가?

눈이 일찍 트인 놈은
스물도 채 되기 전에 집을 떠나
이발소, 우동집 가리지 않고
팔도를 전전하며 굴러다니기도 하고

뱃보가 좀 큰 놈은
전답 팔아 짐 싸들고 서울로 기어올라
청량리, 왕십리 떠돌아다니다
다 꼬라박기도 하고, 더러는
몇 푼 벌어 사장으로 거들먹거리기도 하고

겁도 없는 녀석들은
불알 두 쪽만 차고
브라질로 엘에이로 혹은 벤쿠버로
어떻게 비비고들 건너가서
노랑머리 서양년 꿰차고
위스키 홀짝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보라, 지금 누가 고향에 남아
그 땅을 지키고 있는가?
있다면
그도 저도 못한 놈들이 홧김에
술만 퍼마시다 일찍 땅속에 들어
고향을 짊어지고 누워 있을 뿐이다.
(임보·시인, 194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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