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 월요일

기생(寄生) 혹은 충(蟲)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 같았으니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서
내가 일년 가깝게 기생했다
깊은 동굴 밖으로 나와서도
살갗에 착 달라붙어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젖 빨아먹었다
성충에 이르지 못했다고
아버지, 당신의 집에서
수십여 년을 밥 얻어 먹고
삭월세 없이 지냈다
간혹 둥지나 고치 같은
집 밖에 나와서도
세상을 등쳐 먹었다
산으로 섬으로 돌아다니면서
꽃에게 열매에게
탐닉한 뒷간 구데기 같았다
내가 굽어본 흙에서도
내가 바라본 하늘에서도
어느 것 한 가지
기생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에게도
불에게도 기생하였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구걸하였다
따질 것 없이
지난 삶이
다 기생이었다 벌레었다
이제 다 자라 눈에 보이는
내가 이 세상의 기생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