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정갑숙의 ´깊이와 넓이´ 외
<못에 관한 동시 모음> 정갑숙의 ´깊이와 넓이´ 외
+ 깊이와 넓이
탕!
못 하나가
쇠망치를 맞았다
그 순간
못은 깊이를 얻었다.
조금 후
넓은 액자 하나가
못을 붙잡고 벽에 섰다.
액자의 넓이를 붙잡아주는
못의 깊이
보이지 않는 깊이가
보이는 넓이를 이겼다.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못
아직 나는
한 번도 받아든 적 없는
아버지의 작업복을
때로는 엄마의 젖은 앞치마를
날마다
소중하게 받들고 있다.
벽 한쪽 구석을
차지한 너는.
(이혜영·아동문학가)
+ 아빠라는 못
못은 작아도
힘이 세다
옷
모자
거울
천지를 인
백두산을 담은 액자도
떡하니, 걸어놓는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와
우리 집 네 식구를
걸어놓고도
끄떡없는
우리 아빠라는 못은
더 힘 세다.
(최진·아동문학가)
+ 지렁이 못
새로 포장한 시멘트 길에
대못 하나가 버려져 있다.
가까이서 보니
죽은 지렁이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길 잃은 지렁이 한 마리
시멘트 길을 뚫지 못하고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김병옥·아동문학가)
+ 구부러진 못
깜깜한 연장통 안에서
몸 구부리고
잠자는 못
아버지가 망치질로
툭탁탁
잠을 깨운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잠만 자는
못의 생각을 깨운다
못은
5분도 안 돼
고장난 의자 다리를 치료해 놓는다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못
못은 망치에
얻어맞는다.
고통을
이겨내며
벽에 조금씩 박힌다.
그때 비로소
못은 힘을 갖는다.
무거운 액자와
시계를
거뜬히 든다
(김숙분·아동문학가, 1959-)
+ 귀에 박힌 못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귀에 박힌 못
어떻게 뽑지?
네 방 청소 좀 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
오락 좀 그만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
제발 공부 좀 해라. 말씀하시기 1초 전
그래, 좀이면 될 거야
말씀하시기 1초 전
고 짧은 시간
재빨리 빗자루를 드는 거야
컴퓨터 전원을 꾹 눌러 끄는 거야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거야
어차피 해야 할 일
내가 먼저 한다면
박힌 못 저절로 뽑히고 말 거야.
(김소운·아동문학가, 1908-1981)
+ 튀어나온 못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고?
나는 뾰족한
못이 아니야
호기심이야
질문이야
웃음이야
생각이야
꼭, 하고 싶은 말이야!˝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 때린다는 것
벽에 못을 박는다
벽도 아프고
못도 아프고
망치도 아프고
못 잡은 손도 아프고
망치 쥔 손도 아프고
튀는 못도 아프고
부러진 못도 아프고
윗집 아랫집 귀도 아프고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기철의 ´인생´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