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2003,가을 도시의 풍경

올림픽 제전, 민주화, 노조운동,
고속 성장의 신화 끄트마리에서
여의도 63 빌딩에서 터뜨린 샴페인은
아직 우리의 몫은 아니었다

저기 농촌 저수지 바닥에서 올라온
찬 물안개가 총각의 목덜미를 감고
저기 어촌 수협 건물 앞 바다
붉은 적조의 띠가 처녀의 발목을 감아

구로공단에 올라온 어린 노동자들
철야작업에 젊음의 고뇌를 불태울 때
삶의 꿈과 의미를 잃은 노숙자들은
지하철 바닥에 엎어져 긴 잠을 잤다

몇 차례 불만의 겨울을 겪고난 젊음이
미친듯이 질주하던 여름도 지내고 나면
가을 바람은 더욱 차고 무서운 흉기로
아직 순진한 그의 얼굴을 파고 들었다

몇차례 수재, 인재, 천재의 재난 끝에
허망하게 살아남은 도시의 실향민들,
내핍과 인내만이 가난한 변두리에서
꿈의 나무를 기를 수 있는 인간의 비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