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꽃살문을 닫다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눈 덮인 내소사로 걸어간다
대웅전 단청 벗겨진 창호에
지난 계절의 공양으로
활짝 핀 꽃도 졌으니
솔 바람 새 소리 듣느라
시들 줄 모르는 젓나무라도
곁눈질 해야겠다고
문턱에 앉아 넋을 놓고 있다가
꽃살문을 닫고
동안거에 들기로 한다
고개 뻣뻣하게 쳐들고
날카로운 칼의 눈빛
휘둘렀던 그 많은 시간들
쉴새없이 혀를 굴려
뾰족한 못의 언어
던졌던 그 많은 날들
문밖으로 밀어내놓고
나를 찾지마라 하면서
얼음장 같은 방에
면벽으로 가부좌 틀고 앉아
눈 감고 묵언으로 정진하고 있다
본색을 드러내지 못한 내가
햇빛에 드러난
꽃의 그림자 같다
누군가에게 겉옷처럼 닳아 있다
오래 전부터 내소사에 앉아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 바깥에 꽃살문 닫아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