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당신 받아보셔요

당신 받아보셔요


사랑하는

바람꽃 당신

편지를 쓰네요

뻔한 내용이라

차마 부치지 못할 편지 쓰네요

그래도 내 생각 요만큼이라도 나면

머리 떠오를 때 읽어보시라

마음으로 몇 자 적어요

10년만의 더위라

당신 향한 그리움마저

타글타글 말라가더니

입추 들었다

풀벌레 생기 소식 전해지면서

서붓서붓 당신 고개 내밀고 있어요
그리 참기 힘든 더위였는데

당신인들 제운밤 잠 설치지는 않았을까

잘못 몸져눕지는 않았을까

그리움만 태우며 애 저렸어요


당신 떠난 지 벌써 까마아득하고

눈썰미조차 모자라다 보니

당신 모습도 이제 흐릿해 지네요

마음돋보기라도 써야할까 봐요

그래도 가을 준비는 해야겠어요
곧 서리 내리고 겨울 닥칠텐데

그 긴긴밤 썰멍하게 혼자 보내긴 죽기보다 싫어요

당신 그림자 빼곡빼곡 박혀 있던 안방 건넌방도 이제

서름하고 덩그렁 하여 사로잠도 못 자고 헤매기 일쑤여요
갈꽃 보기 좋다

모꼬지 그만 기웃거려요

길 가 버들 담벼락 꽃도

한철이라구요

진 데 잘못 디디다 갈 길 잃어버리면

한데서 바람 이슬 먹고 자려는가요

당신 안에 사시사철 피어나는

제 고운 꽃은 왜 못 보시나요

그저 몸만 오세요

돌아올 날 기다리며

감 밤 도토리

곳간 가득가득 갈무리하고 있어요

함박웃음으로만 오셔도 돼요

당신은 제 쥔이시잖아요

(정(情) 그린 한(恨)이란

한번 안아주고 제 설운 봇물 툭 터져버리면

눈녹듯 사라질거에요)

어디 계신지 몰라

주소도 두서도 없이 편지 썼어요

그저 마음으로만 받아보셔요

답장 받을 수 있으면 좋겠구요

원숭이 해 가을

당신의 눈동자

(P/S)

당신 떠난 지 오래고 눈썰미조차 그러니

그니 저니 모두 당신 같아 보여요

혹여 참새떼들 새살거리더라도

귀설은 말이라 넘겨흘려 주세요

(후기)
- 타글타글
안타깝게 타들거나 말라드는 모양

타글타글 말라드는 입술을 혀 끝으로 추기며 말을 못하고 있는데
지금껏 한 마디의 반응도 없이 마주 서서 수근거리던
동식이와 순도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북한 문학- ′청춘′)
- 생기

생기(氣)
살아있는 기운
- 서붓서붓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볍고 조심스럽게
- 제운밤

겨운 밤
새우기가 힘든 밤

제운밤 촛불이 찌르르 녹아버린다/
못견듸게 묵어운 어느 별이 떠러지는가/
어둑한 골목골목에 수심은 떳다 가란젓다/
제운밤 이 한밤이 모질기도 하온가
(김영랑, ′찬란한 슬픔′)
- 서름하고

사귀는 사이가 가깝지 못하고 서먹하고
낯설고

그렇지만 길은 역시 길이었던가/
사람 사는 마을 앞/ 마을길인데/
서름하고 두렵기가 그림자일망정/
(박용수, ′징소리′)
- 사로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자는 것

칠성아, 너는 댁에 있어해 지거든 일찌거니 문을 닫고
잠을 사로자며 가끔 앞뒤뜰로 돌아다니며 신칙을 단단히 하여라
(이해조, ′九疑山′)
- 그니 저니

그 여자 저 여자

새벽달 울 때마다/ 무릎 꿇는 그니/
순백의 이마에/ 외딴 섬처럼/ 촛불이 켜진다
(조재훈, ′남녁을 바라보며′)

대상이 남자인 경우는 『그남 저남』이라 해야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