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독백처럼 수신불명의 글을 쓸 뻔했다.
떠도는 바람에 국화잎이 몇 장 흩어졌다.
그때 흙 속에서 뿌리들의 간헐적인 뒤척임을
듣는다. 한 천년쯤 계속된 속수무책의 그리움처럼
꽃들이 이밤 추억 한 것은 무엇인가.
꽃이 진 다음, 엇갈린 첫눈이
텅 빈 씨방위로 천천히 오는 소리가 아닐까.
가을꽃과 달리 그리운 것도 없는 밤
이국의 불법 체류자처럼 바람소리를 베고
얕은 잠 속을 헤맨다.
아직도 옛사랑의 변방에서 홀로 눈을 맞고 있을
순정한 영혼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의 시간은 가고
먼데 개짖는 소리만 오래 들려온다.
허공에서 죽은 새가 낙하하는 시간만큼 긴 어둠이
정처없이 흘러가고
그 까닭을 다 헤아릴 수 없는 삶의 수레들이
다시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