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흙무덤
아래 깊고 깊은 어둠속에 갇혀있던
흰 옷입은 한 사람
오천년 몸이 배배 꼬인 마른넝쿨 인양
눈 먼 채 죽어 있을 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그리로 고개를 돌리니
큰 구렁이처럼 또아리 튼
커다란 나무뿌리 하나 보였다
온통 어둠 뿐이던 그 곳에
한 줄기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허공에 두 손을 한참 더듬어 닿은
한 가닥 얽힌 긴 뿌리를 잡고서 아둥바둥
좁은 구멍을 통과하여
위로 위로 몸을 기어오르니
붉게 부서지는 향기로운 흙내음 사이로
어느새 하늘이 보였다
아, 뿌리가 하늘이었던가
수천년전 흰머리산 신시에
심거진 박달나무, 밝고 훤한 그 나무는
무너진 흙무덤
그 근처에 뿌리내리고 있었는 데
바람과 비와 햇살을 받아
나날이 나날이 점점 크게 자라나
칠흑 어둠 속에 갇혀있던 한 사람이
눈을 뜨고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뿌리 깊은 굵은 나무가 되어
땅속 바위층을 조금씩 조금씩 부수며
선조들의 뼈가 삭은 하얀 흙이
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아, 뿌리를 모르는 이들이 사는
마을의 하늘은 아직 흰 옷입은 이들이
사는 마을의 하늘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