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6일 화요일

친견(親見)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쳐왔단다
눈물도 없이 그 옷을 잘라
책의 장정을 삼고
공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훈계를 주려고
노을빛 치마로 엮은 수첩이라
하피첩이라 불렀단다
붉게 흘린 각혈의 몸에
등불도 켜지 않은 채로
밤새도록 검었던 그리움의 글들
먼 혹성의
내가 귀양살이하고 있는 곳으로
당신이 보낸 편지를 친견한다
살을 갈고 뼈를 깎아서 썼으니
금약의 맹세 아니었던가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세상에
한 걸음 당신에게 다가서는 것이란
유배지에서 편지 쓰는 것 아닌가
오래된 기억을 거슬러
당신의 눈빛을 친견한다
내가 잠깐 만졌던
폐허 위의 우뚝 선 탑 같은
내가 얼핀 보았던
언 땅을 뚫고 나온 얼음새꽃 같은
병든 생生을 치유하리라고
저것이 금강金剛 아닌가
저것이야말로 마음의 친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