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0일 수요일

전병호의 ´내 작은 어깨로´ 외


<더불어 삶에 관한 동시 모음> 전병호의 ´내 작은 어깨로´ 외

+ 내 작은 어깨로

우리 동네 기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빈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전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아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옷자락에 손을 감추고

몹시 피곤한지
눈을 감더니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우리 나라 땅에 묻었을
새끼손가락 마디.

아저씨는 지금
바다 건너 먼 고향집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 작은 어깨로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받쳐 주었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벼의 기둥

모내기할 때
농부는
볏모를 한 개씩 심지 않고
네다섯씩 심는다.

나무는 띄엄띄엄
고추, 가지도 거리를 띄어 심는데
모는 여럿을 함께 심는다.

나무처럼 든든한 뼈가 없어
가는 바람에도
몸 가누기 힘겨워하는 벼들

장마에도 태풍에도
쓰러지지 말라고
서로 서로 기둥이 되어 주라고
형제들을 같이 심어준다.
(정진숙·아동문학가)
+ 마중물과 마중불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별이 나에게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전영관·아동문학가)
+ 아름다운 만남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곽홍란·아동문학가, 경북 고령 출생)
+ 어깨동무하기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모두 함께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김위향·아동문학가)
+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으리으리한 궁궐에
정원수가 될 생각은 없다.
뭇 사람들이 몰려들어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값비싼 귀한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 또래와 더불어 사는 곳
남들 따라 꽃 피우며 열매 맺으며
가물면 같이 목이 마르고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강물이 흐르며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처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없이 먼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

낯선 물이 끼여들면
싫다 않고 받아 준다.
패랭이꽃도 만나고
밤꽃 향기도 만난다.
새들의 노래가 꾀어도
한눈 팔지 않고 간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끼리끼리 모이면

혼자는 싫어
떼 지은 참새.
˝짹 짹 짹˝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겨요.

방울 방울 물방울
개울 되어 흐르며
˝졸 졸 졸˝
끼리끼리 모이면
노래가 생겨요.

햇볕 드는 담벼락
아이들 모여 앉아
˝재잘 재잘 재잘˝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이 생겨요.
(이혜영·아동문학가)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1958-)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김승희의 ´꿈과 상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