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0일 수요일

매혈(賣血)

한창 젊었을 때
고향 떠나온 그가
도시에서 피를 팔아
한 철을 지낸 적 있었다고
겨우 허기를 메운 값으로
하늘 쳐다보는 눈빛이
노오랗게 변하고 있음을
진정 몰랐다고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어
길가의 은행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서 있었다고
뼈만 남은 어깨 위로
저녁 반주 한 잔 걸친 달이
휘영청 걸터 앉았다고
달빛 따라
노오란 낙엽 같은 피가
쿨렁쿨렁 도랑을 이루고
시내를, 계곡을 이루었다고
저를 버리고 나온
핏물이 장마가 되어
추한 것을 악한 것을 씻겨
다 떠내려 보냈으면 했다고
더 뽑을 피가 없으니
덜컥 달이
몸속을 열고 들어와 앉아서는
문밖으로 나가지를 않는다고
은행나무 그 노오란 피를
세상에 다 팔았으니
푸른 피가 샘 솟아나는
헌혈 같은 봄을 기다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