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이해인 수녀의 ´나를 키우는 말´ 외


<말의 힘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 수녀의 ´나를 키우는 말´ 외

+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해인·수녀, 1945-)
+ 말의 힘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황인숙·시인, 1958-)
+ 풋살구

풋살구, 라는 말을 들으면
풋, 풋, 풋,
입 속에 문득문득
풋살구가 들어와요

풋살구, 라는 말을 하면
살구, 살구, 살구,
입 속에 자꾸자꾸
침이 생겨요
(안도현·시인, 1961-)


+ 별일 없지

별일 없지
특별한 수식어도 아닌 이 한마디

한 사흘만 뜸해도
궁금하고 서운한, 지극히 평범한
이 한마디
봄비에 샘물 붇듯, 情이 넘쳐나는

곁에 두고도 자꾸 보고픈 내 새끼들
이 세월토록 情 쌓은 내 좋은 사람들
그렇고말고
우린 별일 없어야지, 참말로 별일 없이
살다가 수월하게 고이 가야지

간단명료하고 진솔한 이 한마디
밥 안 먹고도 고봉밥 먹은 듯
세상 온통, 북소리 둥둥 신명나고
곧장 눈시울 뜨거워 사랑이 아파 오는
흔하고 귀한

별일 없지
(변영숙·시인, 1931-2010)
+ 힘센 말

말은
힘이 세지
정말 힘이 세지

짐수레를 끌고
따각따각 달리는 말보다
말은
힘이 세지.

´미안해´
한마디면
서운했던 생각이 멀어지고
화난 마음이 살살 녹지.

´잘할 수 있어´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없던 힘도 불끈 솟지.
(정진아·아동문학가, 1965-)
+ 바늘꽂이

바늘이
바늘꽂이를 파고든다
이를 악물며 참는
바늘꽂이.

우리도 그래
뾰족한 말이 가슴에 꽂힐 때
이를 앙다물고 참아야 해
쏟아 놓으면 누군가의
마음에 꽂힐 거잖아.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말

하루의 뒤뜰을 걷다 보면
자꾸만 떠오른다.

날개 달고 날아간
나의 말 중에
다듬어진 말
뾰족했던 말

친구 마음속에
새로이 둥지 틀어
별처럼 반짝이고 있을까?

혹시 콕콕 찌르고 다니지나 않을까?
(심효숙·아동문학가, 1962-)
+ 한마디 말이 그 얼굴을 빛낼 수 있다

한마디 말은 말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빛낼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익은 한마디 말은
일을 위한 거대한 에너지를 얻는다.

전쟁은 한마디 말에 의해 짧게 끝나고,
한마디 말은 그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독을 버터와 꿀로 바꾸는
한마디 말이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말을 성숙시켜라.
익지 않은 그 생각을 보류하라.
그래서 돈과 부를 먼지가 되게 하는
그런 종류의 말을 이해하라.

언제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혀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알아라.
한마디 말은 지옥에서 여덟 천국의
우주를 돈다.

그 길을 따라가라. 바보가 되지 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주의하라.
당신이 말하기 전에 숙고하라.
멍청한 입은 영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유누스는 말의 힘에 대해
마지막 하나를 말한다ㅡ
오직 그 말 ˝나˝가
신과 나를 분리한다.
(유누스 에므레)
+ 말들의 후광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의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인가.

오랜만에 뿌옇게 흐려진 거실 유리창 청소를 하다 문득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이 거느린 후광을 생각한다.

유리창을 닦으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고, 마음을 닦으면 세상 이치가 환
해지고, 너의 얼룩을 닦아주면 내가 빛나듯이

책받침도 문지르면 머리칼을 일으켜 세우고, 녹슨 쇠붙이도 문지르면
빛이 나고, 아무리 퇴색한 기억도 오래 문지르면 생생하게 살아나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얼굴빛이 밝아지고, 아픈 마음을 쓰다듬으면
환하게 상처가 아물고, 돌멩이라도 쓰다듬으면 마음 열어 반짝반짝 대화
를 걸어오듯이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 속에는
탁하고, 추하고,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걸어 나오는 환한 누군가가 있다.

많이 쓸수록 빛이 나는 이 말들은
세상을 다시 한번 태어나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
(김선태·시인, 196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도종환의 시 ´담쟁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