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6일 화요일

소망(所望)

내게 커다란 망치가 하나 있어서
높이 쌓아올린 쇠창살 감옥 같은 집을
한 번 세게 탁 쳐서 깨뜨려 무너뜨린 다음에
그곳에다 태풍에 뿌리 뽑힌 나무와
장마에 뱃속 드러낸 황토를 가지고
바람 소리 풍경이 아름다운
작은 집을 뚝딱 뚝딱 지어서
천정에 별이 보이는 방에 애인과 누워
달빛 그림자로 이불을 덮어 옛날 이야기 하고

내게 커다란 삽과 곡괭이가 있어서
흙 한 점 밟을 수 없게
색깔 짙은 돌로 단단하게 눌러놓은 길과
사방으로 금 그어놓은 길과
낱낱이 다 파헤치고 뒤집어 엎어서
그곳에다가 달맞이꽃 들국화꽃 패랭이?br>야생화 무더기로 숨막히게 피어나게 하고
냇물은 졸졸졸 쉴새없이 흘러가면서
거문고 타고 피리 불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내게 커다란 유리가 있어서
아무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꼭꼭 닫아놓은 저 소통 단절의 쇠문 대신에
걸어놓고 아침마다 햇빛 들어와
어깨 두드리며 안녕하시냐고 인사하고
또 혹시 빗님이 오시거나 눈님이 오시거나
하면 누군가 나를 잊지 못해 보내는
연서인 줄 알고 있는 창문 다 열어놓고
공손하게 받아 읽고 답장도 해주고

내게 커다란 우물이 있어서
강둑을 넘치고 넘치는 사랑 같은 샘물을
길을 만들어 저 아랫 동네에까지 내려보내서
갈증나는 세상의 입속을 적셔주고
날개 저으며 가다 지쳐버린 철새들
잠깐 앉았다 그 고운 부리로 한 모금 마시고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전설속의
여우나 늑대도 불러 모아서
서로 사이 좋게 한 바가지씩 떠 먹이게 하고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나의 소망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나의 소망을 편지에 적어
하늘에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