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한밤중 같은 꽃이
지상에 어디 있을까 했는데
때 아닌 폭우와
강풍에 쓰러져 누워 있어
네가 검은 꽃이로구나
며칠째 눈 감은 네가
아직 캄캄한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여 헤매고 있구나
들판에 저 꽃들은 야단스럽고
앞산에 저 단풍은 어지러운데
불빛 오래 전에 꺼져버린 빈집에
검은 까마귀 울어대더니
자폐처럼 혼자 돌아앉은 네게서
적막한 꽃이 피었구나
세상의 빛깔 다 끌어안고
칠흑으로 멈추어 선 것 좀 봐라
이제 그만큼 피었으니
오늘은 그늘에서 화들짝 깨어나
햇살 비치는 꽃밭처럼
찬란한 무지개 꽃 읽게 해다오
부풀어 오른 너의 살갗에서
짙은 향기의 가락을 들려다오
네 검은 몸에서
환하게 밝은 별 돋아나게 해 달라고
내가 촛불로 타오르겠다
주단을 깔고 무릎 꿇은 내가
몸 가르고 바치는 제단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