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목요일

묵서墨書

반 만년 잠들었던
봉분을 파헤치고 있는데
묵서가 발견되었다
닥나무 백지에 상형문자의
붓글씨가 엊그제 쓴 것 같다
먼 훗날 누가 찾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은 마음의 기록인지
벌레 먹지도 않고
색 바래지도 않은
처음의 탯줄 잘라놓은 모습이다
육신은 삭아서 이미 흙과 섞였다
그러니 먹으로 쓴
저 검은 글씨는 혼이 분명하겠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다시 이승에서
무엇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던 기도문이다
그러니 저것이 문닫고 행했던
안거의 묵언이겠다
환하게 열린 무덤 속으로
뱀 같은
햇살 한 자락 기어들어가더니
묵서의 저 글들이 살아 꿈틀거린다
부전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급하게 물 건너 쫓아가는데
내 정원의 꽃나무에 한참을 앉아
흰꽃으로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