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오세영의 ´촛불´ 외
<촛불에 관한 시 모음> 오세영의 ´촛불´ 외
+ 촛불
꺼져라, 가냘픈 촛불, 꺼져라
흔들리는 촛불,
아픔의 심지를 태우는 마지막의
불꽃아,
천상으로 오르는 음악과
지상으로 내리는 꽃잎이 부딪쳐
튀는 불꽃아,
영원과 찰나를 잇는
실낱같은 그 줄이 끊길 때
너는 드디어 촛불이 된다.
(오세영·시인, 1942-)
+ 촛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가슴 시린 아픔이라는 것을
그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하나의 촛불이 된다는 것을
그대를 알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윤수천·시인, 1942-)
+ 네가 켜는 촛불은
네가 켜는 촛불은 희미하나
촛불을 켜는 네 마음은 하늘이구나.
아무리 늦은 밤 돌아와도
불 밝히고 기다리는 창문이여.
네가 이 세상의 풍경이 되거라.
(김형영·시인, 1945-)
+ 촛불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길래
흰 눈물을 주야장천 흘리고 있니
(반기룡·시인)
+ 촛불
견디기 힘든 일들
뜨거운 눈물로 씻어
자신은 캄캄해도
마음은 늘 환하여
기쁘게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면 좋겠다.
(민병도·화가 시인, 1953-)
+ 촛불
만나면 분명
꽃인데
물러나면
그
자리에 눈물
가
득
지
네
(구재기·시인, 1950-)
+ 촛불의 미학
한 스푼의 바람과
잘 익은 몇 방울의 눈물
꽃은 그것들의 결합일까
분해일까
여백 위로 떨어지는
타다만 그림자는
또 누구의
가슴인가
(나호열·시인, 1953-)
+ 촛불의 미학
마침내 굳어버린 가슴을 녹이고
마알갛게 흐르고
이제야 곧은 심지를 따라
기도하듯 하늘 오르는 불빛
내 심지는 저렇듯 곧은가
똑바로 서서
제 이성이나 소망이나 사랑이나
온갖 사유들을 일관되게 태워 올리는가
그래서 세상의 빛인가
파르르한 불빛으로도
제 아래 그림자만은 지우지 못하듯이
더러 흔들리며
더욱 낮아지며
깜깜한 세상을 의혹한다
(김영천·시인, 1948-)
+ 촛불 하나 켜고
어둠 밝힐
촛불 하나 켜고
욕기慾氣를 눌러 봅니다
내 몸 태우며
주위에 밝음 주는 몸짓에
겸허謙虛를 배워 봅니다
나의
그 무엇으로
당신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을지...
(최원정·시인, 1958-)
+ 한 자루 촛불로
걸어가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치마가 입고 싶었습니다
천진스런 아가를 바라보다가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정스런 연인을 바라보다가
나도 사랑이 하고 싶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나도 하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하나
하얀 맨몸 사위어
어둠을 밝혀가는
한 자루 촛불로 살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김옥진·시인, 1962-)
+ 촛불의 독백
자그마한 접시 위에
나는 홀로 서 있어요
불을 밝히고서
내 몸이 불을 토해
주위가 밝아지면
어둠은 내가 무서워
저만치 도망가요
아주 머얼리로
뜨거움에 뜨겁게
내 몸이 녹아 흘러
내 키를 작게작게 만들어 가도
나는 빛의 요정
행복해요
사르고 또 살라
태우던 몸마저 사루어
내 자태 흔적 없어도
나는 찬란한 빛을 품은
영원한 빛의 요정
행복한 빛의 요정
(김옥진·시인, 1962-)
+ 촛불
눈물이 승화되어
빛을 발하는가
어둠을 딛는 걸음이
어찌 그리도
활발할 수 있는지
순종의 몸짓이
더욱 더 애닯구나
미처 다하지 못한
사연 때문에
흔적마저 어지럽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촛불 여덟 개
내 동굴은 깊어서
촛불 한 개로는 어둠을 불사르지 못한다
여덟 자루를 한꺼번에 켰는데
타 내려간 길이가 서로 다르다
길고 짧고 짧고 길고
그것은 불꽃도 그렇다
길고 짧고 짧고 길고
그러나 불꽃의 움직임은 모두 같다
오른쪽으로 다 함께 기울고 하지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방향은 다른데
감탄할 정도로 조용하다
한 놈도 입을 여는 놈이 없다
불은 말보다 밝고 뜨겁다
(이생진·시인, 1929-)
+ 촛불에게
누가 빌다 간 꺼진 촛불에 불붙이며
저에게는 한 푼도 복을 주지 마시라고 빕니다.
찬란한 환희의 속세만 있어도 행복이오니
제발 복이 있으시거든
손톱만큼이라도 촛불에게,
땅에 내려앉지 못해 하늘을 넘보는
다만 눈물로 포효하는 촛불에게 주소서.
다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이미 주신 복락을 다 쓰기에도 불행이오니
작은 바람에도 가물거리는
여린 소망을 보소서.
두 개나 뚫린 눈을
캄캄한 촛불에게,
두 개나 열린 귀를
우두커니 앉은 촛불에게,
두 개나 뻗은 손바닥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촛불에게,
천 갈래 만 갈래 펄럭이는 마음 거두어
촛불에게 주소서.
당신의 손길로 끄신 이 촛불은
아무리 그러셔도 한 번 토라지지 않고
불붙이면 또 불붙습니다.
다 타버릴 때까지 타야겠다고
다시 심지를 세웁니다.
(최영철·시인, 1956-)
+ 촛불
희미한 방
환히
밝히는
식탁 위
촛불
한 자루
시끄러운 세상 일
불 지피면서
아픔을 참고
자신을 태우는
너는
길 잃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도우미
작은 가슴 가슴
고운 빛 되어
길 여는
작은 빛
커다란
사랑.
(강구중·아동문학가)
+ 뜨거운 눈물
반가워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말로 뜨거운 눈물은
타는 촛불뿐이다.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촛불 두 자루
퀘벡 가는 길에 몬트리올
성 요셉 대성당에서
애들 앞으로 촛불 두 자루 밝혔습니다
세상에 소원이 많아
수많은 촛불 펄럭이는 가운데
불꽃 두 개 늘었습니다
우리 내외의 것은?
그만두었습니다
그 두 자루 환하면 됐지요
(심호택·시인, 1947-2010)
+ 촛불
네가
스스로 몸을 사름은
인간의 맺힌 한(恨)과 원(願)을
구원자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한
성스런 의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기에
네가 불을 밝히는 곳은
으레
인간과 신(神)이 공존하는
지성소(至聖所)였다..
그러나
요즘엔
네가 있는 곳이면
맞서는 잇속들이 부딪치는
갈등과 반목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러는
너의 불빛이 꺼지고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서
어둠을 비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너를 꺼뜨릴 수는 없다.
(김기상·시인)
+ 촛불 공양
부처님
저의 눈을
밝게 해 주셔요,
촛불의 밝음을
저의 가슴 구석구석
안겨 주셔요.
밝아진 눈으로
밝아진 마음으로
밝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셔요.
그러면
이 세상 여기저기
극락이 되겠지요.
(작자 미상)
+ 촛불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너의 연약하고도 곧은 심지
바람에 곧잘 휘청이거늘
꺾일 줄이야 도무지 모르나니
창 틈으로 스며든 밤공기에도
한 송이 꽃처럼 화들짝 놀라
불현듯 붉게 휘청이다간
이내 온몸으로 슬피 흐느껴 우는
너 순백(純白)의 눈물이여!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흔들렸어도 다시 서면 괜찮다
이 세상 낡고 곰팡내 나는 궤짝 속에서
내 너를 기어이 찾아서 내어
은밀하고 섬세한 나의 손길이
사랑의 불을 댕기었거늘
투명한 나의 손이
너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리라
마지막 불꽃이 내 안에 녹아
비로소 너와 나 하나를 이루기까지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그래 괜찮다!
(홍수희·시인)
+ 촛불 같은 삶
그리 밝지는 않아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태워
세상을 밝히려는
이제 촛불 같은 삶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두 손으로 촛불을 감싸고
내 가슴에 비치는 양심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보다 겸허한 마음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한순간 타오르는 모닥불보다도
잔잔한 불빛으로
우리 사는 세상을 밝히려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욕망을
불꽃 속에 태워버리고
세상의 한줄기 큰 빛 되기 위하여
하나의 불꽃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김낙영·시인)
+ 마음의 촛불
밤이 되면 밤마다 나의 마음속에 켜지는 조그만 촛불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꺼질 듯 꺼질 듯
나의 외로운 영혼을 받쳐주는
희미한 불빛
그는 나에게 한없이 깊은 묵상을 가져오고,
한없이 먼 나그네길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고요히 하늘가 그 어데
성스런 곳에까지 나를 인도합니다.
아- 밤이 되어야 눈뜨는
가련한 이 내 몸이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날 인도하는
외로운 촛불이여
드디어 밝은 새벽이 찾아올 때
나는 이 촛불을 끄고
나의 두 눈을 감아야 합니다.
눈부신 아침 태양을-
그리고 복잡한 아침거리를 보지 않기 위하여-
아 여명을 무서워 떠는
새까만 이 내 눈동자여
(함형수·시인, 1914-1946)
+ 마늘촛불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놓은 마늘쪽 가운데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어미의 태 안에 앉아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내 비유법이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삼겹살 함께 씹어 삼키는데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촛불처럼
내 안의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헛헛한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나도 누구에겐가
싹이 막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복효근·시인,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나태주의 ´시장길´ 외 "> 나태주의 ´겨울나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