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정식(定食)을 먹다

저녁 느즈막하게
일 끝낸 후에 배가 출출하여
한 끼 요기를 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이
녹번 전철역 좌판대 길이다
굴러가는 바퀴가 많으니
먼지 많은 이 길이 식당이다
오랜만에 정식을 주문한다
먼저 내온 찬은
수레에 색깔 좋은
갈치, 명태, 고등어, 오징어
그 뒤에 갓 따와 싱싱한
오이, 호박, 양파, 고추 한 판
그 다음에 잘 포개 얹어놓은
사과, 배, 감, 귤이 가득이다
밑반찬은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거다
밥은 수북하게 쌓인
낙엽으로 대신하고
내 눈빛이 빠르게 움직이니
젓가락이다
내 마음은 한 술 떠서 입에 건네니
숟가락이다
가만 보아하니 국이 빠졌다
옆집에 올려놓고 파는
두부와 된장과 파를 넣고
불 붙은 단풍나무에
냄새 질퍽하게 소문을 내며 끓인다
맛깔난 가을이
한 상 잘 차려 내온 정식이다
든든하게 한 공기 다 먹었으니
밥 먹은 값으로
세상 모든 것과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