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7일 금요일

윤수천의 ´파도는 왜 아름다운가´ 외


<파도 시 모음> 윤수천의 ´파도는 왜 아름다운가´ 외

+ 파도는 왜 아름다운가

내가 당신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밖에 없다.
내 몸을 둘둘 말아 파도를 만들어
끝없이 끝없이 부서지는 일
곤두박질을 치며 부서지는 일

파도는 부서지고 싶다.
차라리 닳아지고 부서져 아름답고 싶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므로
(윤수천·시인, 1942-)
+ 파도

잠들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되돌아오고
되돌아가고
(정숙자·시인, 전북 김제 출생)
+ 파도

죽이고 또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얼마를 더 죽여야만
죽일까 저 바다를,

신새벽
허연 뼈 하나
일어서는
이 그리움을...
(이구학·시인, 전북 순창 출생)
+ 파도

위험스런
광녀의 깔깔대는 관능이다

뜨겁게
밟고 가는 절묘한 떨림이다

환장할!
오르가슴의
숨막히는 간통현장
(조명선·시인)
+ 파도

어제도
오늘도
계속
밀려오기만 하였다

어둠이 오고
새벽이 와도
한 번도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박우복·시인)
+ 파도

지우고 쓰고
쓰고 지우고,
파도가 밀려온다.
울고 웃고,
웃고 울고
한나절, 갯가에
빈 배 지키며
동,
서,
남,
북,
소금밭 헤매는 갈매기같이

지우고 쓰고,
쓰고 지우고,
萬里長書로 밀리는 파도.
(오세영·시인, 1942-)
+ 파도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
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
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
생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
그 팔의 가락으로
푸르게 심줄이 떨리는
그 힘 한 줄기로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궁극의 힘
(신달자·시인, 1943-)
+ 파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타협하는 마음에
매질하는 소리를 듣는다

못난 놈
비겁한 놈
밤새도록
비난받아 마땅하다
(공석진·시인)
+ 파도의 꿈

하염없이 돌진하여
창백한 포말로
부서지는 저 고행
어느 먼 대양을 지나
도움닫기로 이곳까지와
넘지 못할
절벽 앞에 부서지는가
얼마나 더
깊은 상처로
수면을 보듬어야만
파도는 절벽을 넘어
떨리는 전율로
뒤돌아서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다볼까
(차수경·시인, 충남 서산 출생)
+ 파도의 비명

파도는 왜 밀려오고 밀려가며
울부짖는 것일까

왜 밤이면 별들은 슬픈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기나긴 가을밤을 풀벌레는
왜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것일까

나는 왜 모두가 잠든 고요한 이 밤
홀로 깨어 뒤척이는 것일까
(최다원·화가 시인)
+ 파도

파도는 홀로 울지 않는다
파도는 홀로 물결치지 않는다
그것은 절망 속의 기지개 같은
물새들의 몸부림일 뿐이다
누가 보았던가 갓 잡은 생선의
아가미의 벌떡임을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는 것은
해일로 갯마을을 쓰러내려는
반역의 폭풍이 아니다
그것은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해맞이다
진군의 용트림이다
(한승필·시인, 경기도 포천 출생)
+ 파도

성난 사자가 꼬리 풀어
줄줄이 달려온다

소리 치며
입에는 거품 물고
먹이 사냥 나선다

하이얀 모래밭은
반항도 놀람도 없이
넓은 가슴 펴고
조용히 부서진 짠물을 마신다.
(유소례·시인, 전북 남원 출생)
+ 파도

잠들지 않은 영혼이
파도를 타고 온다

풀어헤친 여인의 머리채인 양
海溢은 바다를 흔들어

어둠 속에 물기둥
하늘에 세우더니

광기들을 내려놓아
바다 깊이 침몰시킨다

고독은 몸부림치면 칠수록
까마득히 깊어만 간다.
(장은수·시인, 충북 보은 출생)
+ 파도

파도는
힘을 가지고
섬을 부추겨 일으키고 있구나.

섬을 일으켜
푸르게 높게 떠올리고 있구나.

가슴속에서
출렁거리는 사랑이여,
네 힘이 스러지면
나는 곧 한 사발의 물에 불과함을,
엎질러지는 물에 불과함을,

파도는 몸으로 말하고 있구나.
바위에 몸을 던져 깨뜨리면서
말하고 있구나

섬이 가라앉을까 두려워
파도는 그 신잡힌 몸짓을 멈추지 못하고

사랑이여,
한 사발의 물을 엎지르지 않기 위해
나에게서 떠나지를 못하는구나.
(문효치·시인, 194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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