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낮게 다가왔던 하늘도
저 만큼 제 자리로 물러나고
구름 사이로 명주실타래 풀어내리듯
초가마을 속속들이 적시는 저문 날
굴뚝마다 연기가 간만에 피어 오르고
먼 길 떠날 봄 날에 오신 손님들
제각기 손 거울을 들여다 보며
마지막 떠날 채비에 아무런 말이 없다
모두가 첫 만남이었지만
벌써 한 솥밥을 먹은지도 반 년이 훌쩍 가고
서로 몸 부비며 따스한 체온을 나누던 정
어이 쉬 떠날리야
이 밤 군불을 지펴주는
마지막 아낙의 구리빛 손길
차린 것 없을 땐 마냥 편하다더니
한 상 그득하려하니 서둘러들 일어서니
누추한 집 거저 왔다 가도 고마운 걸
갖 가지 풍성한 양식과
입은 옷 가지들마저 다 벗어 주고 가는
하 저 고마운 님들
이 밤 지나고 비가 그치면
뿔뿔이 흩어져 떠나야 할 저들이기
빈 몸이라도 데워서 보내야지
아낙의 눈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이 밤마저 가을비에 하염없이 잠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