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이기철의 ´인생´ 외


<인생 시 모음> 이기철의 ´인생´ 외

+ 인생

인생이란 사람이 살았다는 말
눈 맞는 돌멩이처럼 오래 견뎠다는 말
견디며 숟가락으로 시간을 되질했다는 말
되질한 시간이 가랑잎으로 쌓였다는 말
글 읽고 시험 치고 직업을 가졌다는 말
연애도 했다는 말
여자를 안고 집을 이루고
자식을 얻었다는 말
그러나 마지막엔 혼자라는 말
그래서 산노루처럼 쓸쓸하다는 말
(이기철·시인, 1943-)
+ 파도를 보며

파도를 본다
도도한 목숨이 추는
어지러운 춤이여

울고 사랑하고 불타오르고 한탄하는
아아 인생은 위대한 예술

그 중에도 장엄한
敍事詩의 한 대목

바라건대 나는
그 어느 絶頂에서
까물치듯 죽어져라 죽어지기를
(유안진·시인, 1941-)
+ 사는 게 꼭 정기적금 같다

사는 게 꼭
정기적금 같다
원금 갚고 이자 물고
제 날짜 넘기면 연체료 물고

정기적금은 벅차면
해약도 하지만
우리 삶은 지치면
중도해지 할 수 있을까

살아온 시간 정산하고
살아갈 시간 반납하면
해약할 수 있을까
해약 환불금 같은 것도
받아낼 수 있을까

사는 건 꼭
평생 상환사채 대출 같은 것.
(김시탁·시인, 1963-)
+ 한세상 산다는 것

한세상 산다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이외수·소설가, 1946-)
+ 세상살이

어느 때 가장 가까운 것이
어느 때 가장 먼 것이 되고
어느 때 충만했던 것이
어느 때 빈 그릇이었다.

어느 때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어느 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오고
어느 때 미워하는 사람이
어느 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어느 때 무엇으로 내게 올까.
(김춘성·시인)
+ 인생은 그런 거더라

이 세상 살다 보면
어려운 일 참 많더라
하지만 알고 보면
어려운 것 아니더라
울고 왔던 두 주먹을
빈손으로 펴고 가는
가위 바위 보 게임이더라

인생은 어느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거더라
내가 홀로 가야할 길
인연의 강 흘러가는
알 수 없는 시간이더라
쉽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은 그런 거더라
(김종구·시인, 1957-)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사진사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며
명함 사진 여덟 장을 나뭇잎 모양으로 빼주는데
절반 가격에 모시겠다고 했었지.
웬 잡상인이 아침부터
교실에서 시끄럽게 한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는데
그때 사진사 말 듣고,
한 장 찍어둘 걸 그랬어.
병원 마당에 가을비 흩뿌리고,
은행잎 한 장 내 어깨에 떨어지니
나뭇잎 모양으로 박혀 있는
열일곱 살 내 얼굴도 그리워지나니…
(서홍관·의사 시인, 1958-)
+ 잡초(雜草)같이 살다 간다

한세상을 굴렀다 간다.
잘살았다 못살았다 말들을 마라!
내 인생 태어난 집 자리가 운명이더라!
개천은 좁아서 용이 못나고
메뚜기가 한철이라도 뛰어야 한자
되는 데로 살았다 말들을 마라!
이래봬도 성실하게 잘만 살았다.
아! 인생은 잡초처럼 연명하는 것
세월을 원망마라! 바보 같은 짓

한 인생을 걸쭉하게 잘살다 간다.
잘났었다. 못 났었다 떠들지 마라!
사자 밥에 집신 몇 짝 모두 같은데
죽어져서 호화 분묘 무슨 소용 있나!
내 마누라 내 자식들 호강 못시켜도
밥 한 숟갈 입성하나 거른 적 없다.
물려줄 재산 없어 형제우애 좋고
따질 조상 없어 체면 꾸길 일없다.
아! 인생은 구름 같이 흘러가는 것
세상을 질타마라! 허망한 짓
(우보 임인규·시인)
+ 7년 단위로 본 인생

어린애는 젖니를 기르다
7살이 되면 모든 치아를 가네.
14살이 되면 신은 성장의 표시를
그의 몸에 드러내게 하네.
셋째 7년 동안은 팔다리가 굵어지고 턱수염이 나고
피부에선 성년의 티가 나네.
넷째 7년 동안 사람은 힘이 절정에 달하고
자신의 탁월성을 한껏 드러낼 일을 찾네.
시간이 지나 다섯째 7년이 되면
사람은 결혼과 장차 대를 이을 자식을 생각하네.
여섯째가 되면 사람의 정신은 충분히 원숙하여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지 않네.
일곱 째 여덟 째 14년 동안 사람은
지혜와 말솜씨가 최고조에 이르네.
아홉째 동안도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말과 생각은 훨씬 무디어지네.
죽음이 올 때 지나간 70년을 모두 헤아려보면
죽음은 그리 빨리 오는 것은 아니네.
(솔론·그리스 시인이며 정치가, 기원전 640-?)
+ 인생

인생은, 정말, 현자들 말처럼
어두운 꿈은 아니랍니다
때로 아침에 조금 내린 비가
화창한 날을 예고하거든요
어떤 때는 어두운 구름이 끼지만
다 금방 지나간답니다

소나기가 와서 장미가 핀다면
소나기 내리는 걸 왜 슬퍼하죠?
재빠르게, 그리고 즐겁게
인생의 밝은 시간은 가버리죠
고마운 맘으로 명랑하게
달아나는 그 시간을 즐기세요

가끔 죽음이 끼어들어
제일 좋은 이를 데려간다 한들 어때요?
슬픔이 승리하여
희망을 짓누르는 것 같으면 또 어때요?

그래도 희망은 쓰러져도 꺾이지 않고
다시 탄력 있게 일어서거든요
그 금빛 날개는 여전히 활기차
힘있게 우리를 잘 버텨주죠

씩씩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시련의 날을 견뎌내 줘요
영광스럽게, 그리고 늠름하게
용기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샬롯 브론테·영국 시인이며 소설가, 1816-1855)
+ 인생

한세월 굽이돌다 보면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

눈물이 너무 깊어
이 가슴 무너질 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잊지 않으리

꽃잎에 맺힌 이슬에
햇빛 한 자락 내려앉으면

그 꽃잎의 눈물이
어느새 영롱한 보석이 되듯

나의 슬픈 눈물도
마냥 길지는 아니하여

행복한 웃음의
자양분이 되리라는 것을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갑숙의 ´깊이와 넓이´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