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달로의 산책

박물관 그림 속의
어느 이국 여인의 눈이다
마음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머리가 텅 비어서
저것을 백 년 동안의 넋이거나
천 년을 지닌 혼이라고 했다
관 밖으로 나서니
물끄러미 바라보는
달이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내 앞에 툭 떨어지는
마른 잎의 편지 한 장
오늘 그대를 뵙고자 하니
허공을 가볍게 밟고 오시라
난생 처음 받아본 戀書에
떨리는 발걸음으로
하늘 계단에 오른다
한 겨울인데 봄이 살랑거린다
눈은 벌써 사라지고
얼음은 흔적도 없이 녹았다
내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꽃망울이 화들짝 터졌다
벌거벗은 내게 날개가 돋아났다
훨훨 날아가는 바람이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여인의 머리 위로
나비 한 마리 날아다니고 나는
꿈결같이 달의 살결을 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