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지난여름에 기억 중

성실하고 반듯한 그대지만
지난여름 무심중에 지은 죄
지우지 못할 기억 몇쯤 있을 수도 있겠다

부산떨며 서둘러 떠난 휴가 길에
해금한 밤 안개
부드러운 샹송처럼 흐르던 해변에서
임자 없는 바람으로 휘청 일 수도 있었겠다

한솥밥 먹던 또래 동료가
희망퇴직서 던지던 날
용기를 잃지 말라 술잔을 부딪히면서도
속으론 은근히 가슴을 쓸어 내렸을 수도 있었겠다

출근길은 장마 비에 짜증나고
퇴근길은 잘 나가는 동창 이야기에 기죽고
저녁이면 숨통 조이는 열대야에 시달렸겠다

그날도 그날 같고
저 날도 저 날 같은 일상에 신물이 나
잔잔한 눈빛의 옆 사람에게 한 퉁바리 냅다 쏟고는
경비실도 못 지나 후회한 적도 있었겠다

그대, 지난여름 지은 죄가 서너 가지 된다면
이 가을엔 서른 번 넘게 좋은 일 할 일이다
계절도 가을이면
밀린 빚을 갚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