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8일 토요일

바람은 그대 쪽으로

바람은 그대 쪽으로
-기형도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 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나는 내가 끝끝내 갈수 없는 생의
벽지를 조용히 바라본다.그대, 저 고단한 등피를 다 닦아내는 박명의시간,
흐려지는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휴식을
끝마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