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조정권의 ´길 위의 행복´ 외


<마음 시모음> 조정권의 ´길 위의 행복´ 외

+ 길 위의 행복

마음을 저축하면
이자가 붙나
마음을 투자하면 두 배가 되나

아니다 마음을 헌금하는 거다
꽃에다 별에다 새에다 샘물에다 이슬방울에다
피라미에다
길에다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면서
길에다 헌금하는 거다
(조정권·시인, 1949-)
+ 다리

다리는
만리를 간단다.

만리를 가도록
시키는 것은 마음이란다.
(강항·조선 유학자, 1567-1618))
+ 문

내 마음속에는
닫힌 문짝을 열고자 하는 손과
열린 문짝을 닫고자 하는 손이
함께 살았다

닫히면서 열리고
열리면서 닫히는 문살을
힘껏 잡고 있으려니

눈물겨워라 눈물겨워라
(안수환·시인, 1942-)
+ 마음 마을

내 마음의 마을을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른다.
내가 천씨요 구천(九天)만큼
복잡다단한 동네다.

비록 동네지만
경상남도보다 더 넓고
서울특별시도 될 만하고
또 아주 조그만 동네밖에 안될 때도 있다.

뉴욕의 마천루(摩天樓) 같은
고층건물이 있는가 하면
초가지붕도 있고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동굴도 있다.

이 마을 하늘에는
사시장철 새가 날아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흰 구름이 왕창 덮인다.

이 마을 법률은
양심(良心)이 있을 뿐이고
재판소(裁判所) 따위로는
양심법 재판소(良心法 裁判所)밖에는 없다

여러 가지로 지적(指摘)하려면
만자(萬字)도 모자란다
복잡하고 복잡한 이 마음 마을이여
(천상병·시인, 1930-1993)
+ 약발

어머니 손길 같은
가랑비가
아버지 손길 같은
햇살이
마른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는다
얼음땅을 꾹꾹 누른다
약발이 듣는지
배꼽 아래 뿌리가 뜨거워지더니
온몸이 질퍼덕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은
살과 뼈 얻어낸 육신에서
푹 고아낸 뜨거운 마음이다

입으로 훌훌 불면서
한 그릇 마시고 나면
얼굴이고 가슴이고 등이고
싹이 트고
새순이 올라오는 게
약발이 제대로 듣는 것이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건
내 삶을 사랑하고
나와 함께 그것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세퍼드 코미나스·심리치료사)
+ 열린 마음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았다.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 된다.
(마틴 부버·독일의 유대계 종교철학자, 1878-1965)
+ 마음의 등대 하나 세우며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

역경이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

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않는 삶

어려울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삶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도종환·시인, 1954-)
+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마음에 저절로 물드는
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
있는 그대로 물드는
그 그림자들도
마음먹은 뒤에 그래요.

마음을 먹는다는 말
기막힌 말이에요.
마음을 어쩐다구요?
마음을 먹어요!
그래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먹으니
노래예요.
춤이에요.
마음먹으니
만물의 귀로 듣고
만물의 눈으로 봐요.

마음먹으니
태곳적 마음
돌아보고
캄캄한데
동터요.
(정현종·시인, 1939-)
+ 배추의 마음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나희덕·시인, 1966-)
+ 때를 미는 사람들

때를 밀 때는
마음의 때도 함께 밀거라

욕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은 사람

머릿속엔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보리수 아래서 참선하는
석가는 아니어도
한 번쯤 명상에 잠겨
마음 비워 볼 일이다.

혈육간에, 이웃간에,
불화로 굳어진 옹이가 있거든
말끔히 풀고 마음을 비우라
무익한 사념도 다 버려라

때를 밀 때는 마음속 때까지도
말끔히 씻어야 하느니
(박광호·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