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1일 목요일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외


<봄을 노래하는 시 모음>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외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시인, 1964-)

+ 봄에는 온통

실비 오고,
실바람 불고,
실햇살 내리고....

봄에는
온통
가느다란 것뿐이야.

새싹,
제비꽃,
보드라운 나비 날개.....

고 작고 여린 것들
다치면
큰일일 테니 말이야.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몸짱 씨앗

요것 좀 봐!

잠자는 척하면서
팔운동
다리운동
숨쉬기운동
부지런히 했던 거야.

안 그러면
이 쪼그만 게
흙덩이를 번쩍
어떻게 들 수 있었겠어?
(이정인·아동문학가)

* 봄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시인, 1962-)

+ 경칩 부근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 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조병화·시인, 1921-2003)

+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봄날

들판엔 아지랑이 피고
공중에 종달새 울면
마당까지 달려온 햇빛은
갓 구운 빵같이 따끈따끈해
바람이 내 맨발을 간질이면
아지랑이 타고 훨훨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어
(이기철·시인, 1943-)

+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봄의 노래

종다리 높은 울음에
모두 잠에서 깨어나기로
약속이 있었나보다

민들레 뽀얀 얼굴.
천사 꿈을 꾸고
마파람 간지러움에
까르르 개나리 웃음소리

아침부터 취한 진달래 보며
장독대 아지랑이 어지럽단다

가만히 있어도 가득 차는 금 빛 아래
생명들의 그림자 놀이

푸른 풀밭에 발돋움하고
수줍게 걸어오는 봄 각시여..
(신현림·시인, 1961-)

+ 봄

멀리서 우리들의 봄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아프게 아프게 온다고 했으니
먼 산을 바라보며 참을 일이다.
가슴에 단단한 보석 하나 키우면서
이슬 맺힌 눈으로 빛날 일이다.
(최종진·신부)

+ 봄꽃을 보니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다 지고 싶습니다
(김시천·시인, 1956-)

+ 다 당신입니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당신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은 말들이
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나희덕·시인, 1966-)

+ 봄과 같은 사람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이해인·수녀, 1945-)

+ 새들에게

새봄에는 어린 새들에게
새파란 눈 주시고

새봄에는 철없는 새들에게
새파란 털 주시고

새봄에는 뛰노는 새들에게
새파란 부리 주시고

새봄에는 착한 새들에게
새파란 날개 주시고

새봄에는 겁 없는 새들에게
새파란 하늘 주시고

그리고 늙은 나에게는
새파란 말도 주시고
(전봉건·시인, 1928-1988)

+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꾹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김남주·시인, 1946-1994)

+ 봄

늘 수수한
모습의 당신이기에

입술에 진한 루즈를 바르거나
손톱에 매니큐어 칠한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곤한 잠에 떨어진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 주다가

불현듯
나는 보았네

연분홍 매니큐어
곱게 칠한 너의 발톱

어쩌면 이리도 고울까
마치 꽃잎 같애

진달래처럼
라일락처럼

너의 작은 발톱마다
사뿐히 내려앉은 봄
(정연복,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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