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편지를 읽는다
발신처도 없는 세상에서
오늘 불현듯 받았다
종이 위에 박힌 원형의 무늬
둥글게 쌓아올린 문신을
살갗으로 뒤쫓아간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동굴 속 종유석 같은
울음 소리가 맺혀 있다
화석이 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풍광이라
산사도 없는데 범종 친다
내 몸에 점자點字가 돋아난다
소름의 꽃이 무진장 피어난다
육신에 칼이 많아서
덧난 상흔이 또 많다
손으로 더듬어 읽어주어야 할
이력履歷이 또 길어서
저 편지를 봉할 수가 없다
지진 일어나 부서지고 깨진
마음이 저러할 것이다
불에 타버리고 잿더미가 된
몸이 저러할 것이다
시각 없이 읽어야 할
미로의 길이 있어
어느새 둥근 점에 갇혔다
폐가 같은 나를 읽으러
무덤 많은 곳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