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7일 화요일

빨래를 하다

대 부러진 우산 쓰고
산사의 가파른 비탈길 걸어가느라
흙비에 등가죽이 찰싹, 달라붙었다
진흙탕에 무릎까지 푹, 빠졌다
간신히 걸음 옮기는 중인데
한 발 옆을 지나가는 것마다
구덩이에 고인 녹물 탁, 튀겨주더니
속옷까지 흠뻑 다 젖었다
마침내 살이 썩어가고
뼈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먹장 구름 물러가고
오랜만에 낯 뜨거운 해 나왔으니
내 몸을 벗겨
골고루 비누칠을 해야겠다
넓적한 바위에 몇 겹으로 포개놓고
방망이로 세게 두들긴다
손으로 빡빡 문지른다
온갖 번뇌의 때 나오는 거 봐라
그러니까 58년에 물밖으로 나와
옷 한 벌 겨우 해 입고
빨래 한 번 안 했으니
폐수 같은 구정물로 고약하다
갈아입을 옷이란 수의밖에 없으니
담벼락 위에 널어놓고
고샅까지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새옷처럼 깨끗해진 몸으로
일주문을 내려간다
내 뒤에서 연신
범종 치는, 법고 두들기는 소리가
세상을 빨래질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