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6일 금요일

풀밭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듣다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러나 전날의 덤불 속에서
아직도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꽃,
성애의 풀밭에서 놀던 젊은 사자들의
하품소리. 오후의 대기 중에 흩어질 무렵
바오밥 나무 등 굽은 그림자 너머
목신의 피리소리 들려온다
저기 한 낮의 초원 가로질러 오는
라벨의 볼레로. 관능의 불꽃은
어느새 규칙적인 음으로 행군한다
너와 나의 신체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다리,
지식으로 바뀐 격정의 숲에는
지금도 안달루시아 고원을 넘어가는
한 마리 낙타가 있다

해석학의 풀밭에
나무는 그림자의 눈을 달고 있어서
미묘하게 스치는 미풍의 입맞춤에도
부드럽게 순응한다
그래, 너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하나의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내연을 부추기는 힘이 있기에
일깨워진 이마는 신열이 나고
젖은 머리카락은 잔뜩 부풀어오른다
지금도 너는 곡괭이를 들고
새 영토를 개간하러 나서고
빛나는 푸른 물줄기 나올 때까지
파내는 곡괭이 작업,
지루하지않을 도전과 모험인 데
편력의 끝에 선 오후의 여신,
눈부시게 하얀 미소의 옷자락 접으며
서느러운 파초 그늘 아래
지금 그녀에게 좋을 위안 하나,
부도의 그림자를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