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4일 금요일

그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를 위해 하루에 담배 한 개비씩
덜 피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아주 작은 티끌 하나로도
그대의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악보가 되어 주진 못하나
건반이 되어 소리를 내겠습니다.
건반마저 되지 못한다면
그대가 앉아 있는 의자라도 되겠습니다.

그대가 시집을 읽을 때
시는 되어 주지 못하나
안경이 되어 활자를 밝히겠습니다.
그마저 되지 못한다면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책갈피라도 되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작정한 모든 것이
그대 눈가의 잔주름 하나 지울 수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된들 상관 있겠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대 곁에서
가까이만 있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행여 티끌 하나라도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이정하]그를 위해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