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박경리의 ´히말라야의 노새´ 외

<어머니의 고단한 생을 생각함>

박경리의 ´히말라야의 노새´ 외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어머니의 房

어머니의 방은 토굴처럼 어둡다
어머니, 박쥐떼가 둥우리를 틀겠어요, 해도
희미한 웃음 띤 낯빛으로
괜찮다, 하시고는 으레 불을 켜시지 않는다
오랜 날 동안
어둠에 익숙해지신 어머니의 몸은
심해에 사는 해골을 닮은 물고기처럼
스스로 빛을 뿜는 발광체가 되신 것일까, 흐린 기억의
뻘 속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바지락, 동죽, 가무락조개,
여직 지워지지 않는 괴로움과
마지막 남은 혈기 다해 가슴속에
푸른 해초 섞어 끓이는
바다에서의 半生을 반추하는 데는 차라리
짙은 어둠 속이 낫다는 것일까, 얼굴 가득 덮인
검버섯 무수한 잔주름살 속으로 잦아드는
낯선 운명을 더욱 낯설게 덧칠하는
치렁치렁한 어둠 속, 무엇일까, 옻칠된 검은 장롱에
촘촘히 박힌 자개처럼 빛나는 저것은
(고진하·목사 시인, 1953-)
+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 밭에서 오시기 전 사립문은 싸르락싸르락 울고
어머니 사립문 열고 들어오실 때는 울지 않아
머릿수건 풀고 허리 펼 사이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면
꿈결인 듯 밥상이 들어오고
마지막 아버지 숭늉까지 만들어야 잠시 방에 앉는 어머니
온종일 품 파느라 호미 들고 앉은뱅이로 뜨거운 밭 오갔을 어머니
고단한 숟가락에 밥보다 졸음이 먼저 올라앉네
시큰한 콧날 괜스레 움켜쥐고
부엌 문지방에 목 늘어뜨리고 밥상을 건너다보는
백구의 엉덩이를 발로 차 내쫓고는
후덥지근 몰려드는 배나무밭의 더운 바람에 몸을 낮추니
댓돌에 벗어놓은 어머니의 고무신
바닥으로 가득한 흙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두 손으로 어머니의 고무신 털어내니
사립문 덩달아 싸르락싸르락 울고,
(최나혜·시인, 강원도 화천 출생)
+ 어머니 발자국

걸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아파
흉내조차 낼 수 없어
눈물만 쏟아내야 하시는 어머니!
참아낸 가슴에 피를 토해내야 했던
어머니를 헤아리지 못했다.
불효여식은.

비수 같은 언어들을 쏟아내고도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자란 줄 알았던 것은
어머니의 골절 속에 흐르지 않는
血이 될 줄을 몰랐다.

주무시다 몇 번씩 이불을 덮어주시던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고.
밥알이 흩어져 떨어지면
주워먹어야 하는 줄 알았고.
생선을 먹으면 자식을 위해 뼈를 발려서
밥숟가락 위에 올려줘야 하는 줄 알았고.
구멍 난 옷을 입어야 어머니인 줄 알았다 .

밤이면 몸뚱이가 아파 앓는 소리가
방안을 휘감아도 그 소리가 관절염 속에
파묻힌 고통인 줄 몰랐다.

걸을 수 없어 질질 끌고 다니시는
다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자나깨나 자식이 우선이었고
앉으나 서나 자식을 걱정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줄 알았다.

아픈 말들을 주름진 골 사이로 뱉어 냈을 때
관절염이 통증을 일으킬 만큼
˝나 같은 자식 왜! 낳았냐고˝
피를 토하게 했던 가슴 저미는 말들.
너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봐라
네 자식이 그런 말하면 얼마나 피눈물 나는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미웠다.
씻지 못할 철없는 말들을 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머니 마음을 알려 하지만 전부는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뼈가 다 달아서 걸을 수 없어
고통과 사투를 벌이는 어머니!
제 다리라도 드려서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피가 마른 눈물을 어이 닦아 드려야합니까?
어머니의 발자국을 찾고 싶습니다.
어머니!
(애월 김은영·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매듭

택배로 온 상자의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단단히 묶인 끈
보다못한 아이가 칼을 건넨다

늘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
좌석표가 있다는데 일부러 입석표를 끊어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서서 가시며
그 근소한 차액을 남기시던
어머니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분이었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도 넘치기만 할 뿐 말끔히 닫히지 않는 상자를
가로 세로 수십 번 이 비닐끈으로 동여매셨을
어머니의 뭉툭한 손마디가 떠올라
칼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
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
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날에는 이해되지 않던 험한 길 굽이마다
붉게 저녁 노을로 걸린 어머니의 생애
옹이진 어머니의 매듭 같던 암호는
난해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풀어내고 보니
이음새도 없이 어머니의 길은 길고 부드럽기만 하다
(장흥진·시인)
+ 거룩한 사랑

성(聖)은 피(血)와 능(能)이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묻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깔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끓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를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박노해·시인, 1958-)
+ 연탄 갈아넣기 - 어머니 생각

허리 구부려 연탄아궁이에
연탄 갈아넣기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웬일로 연탄은 꼭 새벽에만 갈아넣게 되었던지
웬일로 그때는 또 그렇게 추웠던지
영하 10도가 넘는 새벽 두 세시 사이에
어머니는 일어나 연탄을 갈러 나가셨다
나는 알면서도 잠자는 척 이불을 덮어썼다
그리고 빈말로 어머니를 속였다
왜 저를 깨우시지 않고
연탄은 또 왜 꼭두새벽에 갈아넣어야 해요
그래, 그래야 불꽃이 좋아 아침밥 짓기가 좋지
어쩌다 내가 연탄을 갈러 나가면
어머니는 질겁해 따라 나오시며
너는 연탄내 쐬면 안돼 또 연탄은 구멍을 잘 맞춰야 하는데
너는 안돼 나를 밀쳐내시고
허리를 구부정, 연탄집게로 더듬더듬 연탄을 가시는데
폭 타버린 밑탄을 들어내고 불꽃이 남은 윗탄을 밑탄으로 앉히고
그 위에 새까만 새탄을 밑탄과 구멍을 맞춰 얹으시고
연탄아궁이 구멍을 확 열어 놓으셨다
활활 불꽃을 타고 올라오는 연탄내 때문인지
연신 쿨럭쿨럭 밭은 기침을 뱉으시며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 기름보일러에서 가스 보일러로
바뀌어 지금은 연탄 갈 일 없어졌어요
(정대구·시인, 193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임초롱의 ´아빠의 손´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