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이생진의 ´설교하는 바다´ 외


<바다 시 모음> 이생진의 ´설교하는 바다´ 외

+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이생진·시인, 1929-)
+ 파도

초록빛
매트 위에서
파도가
앞구르기를 한다.
동글, 동글, 동글
동글…….
연속으로
앞구르기를 한다.
바짝
엉덩이에 붙어서
다음 파도가
그 다음 파도가
밀려온다.
앞구르기를 한다.
(손광세·시인, 1945-)
+ 밀물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시인, 1964-)
+ 삼촌

우리 삼촌은 원양어선을 탄다.
그래서 늘 바다에서 산다.

가끔씩 삼촌이 생각나서 내가
전화를 하면

꾸우 꾹, 차르르르 륵, 꾹꾹!

삼촌의 목소리보다 먼저
새소리 파도소리가 날아오고

전화기에도
가득히 파란 물이 배어든다.

삼촌은 바다를 사랑해서 오늘도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고

바다는 삼촌이 좋아서 날마다
삼촌 안에서 산다.
(이상윤·아동문학가)
+ 불타는 바다

바다가 탄다.

엊저녁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던
그 열기가,

이 아침
푸르름 일렁이는
넓은 바다를
금빛으로 태우고 있다.

불덩이를 향하여
달려들던
물기둥도

불길에 싸여
조각조각
타버린
불똥 되어
금싸라기로
바다 가득 퍼져
일렁거리고 있다.
(엄성기·아동문학가, 1940-1998)
+ 바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먼 곳에 있는 사람아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아

바다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지며 깨지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조병화·시인, 1921-2003)
+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1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하늘색 원피스의 언니처럼
다정한 웃음을 파도치고 있었네

더 커서 슬픔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실연당한 오빠처럼
시퍼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네

어느 날 이별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남빛 치마폭의 엄마처럼
너그러운 가슴을 열어 주었네

그리고 마침내 기도를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파도를 튕기는 은어처럼
펄펄 살아 뛰는 하느님 얼굴이었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참 큰 가방

강동 바닷가 마을에는
참 큰 가방이 하나 있다

지퍼 같은 수평선을 열면
멸치 가자미 꽃게 고래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진다

가끔은 타고 나간 배 한 척 다 집어넣고 온 어부들이
신문에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날,
그 가방 속
가득 찬 것도 아니다
그 가방 그 날, 제법 더 묵직한 것도 아니다

강동에 오면
날마다 지퍼 같은 수평선을 열고
그 가방 속에서 둥근 해를 끄집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권주열·시인, 울산 출생)
+ 바다에게·3 - 몽돌

바닷가에서 주워 온
몽돌 하나,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릴 때마다
쏴아- 파도 소리 들리고
눈앞에 바닷물이 출렁인다.

바다가 된 작은 돌멩이-
사랑이란 것,
심신이 닳도록 그대와 부대끼기도 하며
물새 떼 줄지어 떠나고 난 뒤로도
기-인 날 파도가 오가는
시린 해안선을 지켜보며 때론,
눈물 자국 하얗게 말라가는 짠 의미를 맛본 후에야
세월의 깊이로 완연해져 가는 것이라고.

끼룩 끼룩 쏴아-

몽돌 해변이
내 둥근 그리움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허영미·시인, 1965-)
+ 해일

바다는 파도로 말을 한다지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쏴아쏴아,
해조음으로만 듣는다지
중괄호 대괄호로 묶으면서 하시는 말씀을
갈매기들은
수평선까지 물고 와
밑줄을 그어가며 강조한다지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산 채로 짐승을 구워먹는다지
속 깊은 말들이
바다 속 깊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뻐엉뻥, 불꽃놀이만 하다 떠난다지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씩 주석을 달다가 그만
뭍으로 훌쩍 뛰어넘어도 본다지
속곳 깊이 일렁이는 파도를
꼭꼭 여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바다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를 평생
모르며 산다지
(박정원·시인, 1954-)
+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면 바다로 가라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안으로 그 상처를 더 키운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크게 키우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다져
가슴 한구석에 눌러 버리지만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빵처럼 그렇게
돌덩어리가 되어 결국 아픈 기억의 화석이 된다.

산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다.
파도에 깎여지는 갯바위처럼
이리저리 패이고 생채기가 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상보다 더 아름다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함께하는
반복되는 세월 속에 소중한 인연의 연속이다.

마음이 좋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안으로 담아두지 말고
말끔하게 비워 내어야 한다.
깡그리 비워 내어버리려면 바다로 가라.

그곳은 아무나, 아무 때나 말없이
비워 버려 없앨 응어리져 돌이 된 마음을
시원하게 받아주고 어루만져 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넓어진 가슴에 되돌려 줄 것이다.

살다 힘이 들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면
콜럼버스 눈보다 더 넓은 바다로 가라.
이왕이면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로 가라.
(강해산·시인, 경남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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