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고경숙의 ´부부학 개론´ 외


<부부의 날 특집 시 모음> 고경숙의 ´부부학 개론´ 외

+ 부부학 개론

하릴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사람구경도 식상해지면
발 밑에 킁킁대는 개들 좀 보라지.
삐적 마른 놈 눈만 불뚝한 치와와는
영락없이 제 주인 닮았고
긴 털 멋있는 콜리는
외제차 타는 도도한 주인처럼 격이 있어.
시장 바닥에 떠도는 똥개들은
술판 기웃대며 거나한 딱 제 주인이지.

모처럼 부부간에 의기투합했는데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 우리보고
부부가 닮아서 잘 살겠다네.
저 화상보다 내가 한 수 위인 줄 알았는데
우린 코끝에 검댕 묻은 두 마리 똥개였나 봐.

여보야,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 사랑한데이-
깨갱 깽 깽
신소리 마레이-
깨갱 깽 깽.
(고경숙·시인, 1961-)
+ 부부

은사시나무가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서 있다.

그 옆에 나도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섰다.

그렇게 우리는
은사시나무가 되었다.
(정가일·시인, 1952-)
+ 부부

꼭 그만큼의 거리를 두는 철로는
모퉁이를 돌 때면
하나가 되는 뒷모습을 보인다
(정영선·시인, 부산 출생)
+ 어떤 부부 - 동병상련(同病相憐)

몇 해 전부터 아내는 관절염을 호소해왔다.
나도 올해부터 오른쪽 정강이 관절을 앓고 있다.

우리는 만난 지 사 반세기만에야.
아픔을 같이 느끼는 비로소 부부가 되어가고 있다.
(김시종·시인, 1942-)
+ 부부

당신 나 되고
나 당신 되어

기둥 같이 부여안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지치면 손잡아 주고
아프면 안아 주며
때로는 눈감아 그리워하고......
(곽정숙·시인)
+ 부부

남남끼리 서로 만나
한 뜻, 한 몸을 이루고
좋은 일도 궂은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쉬운 일도 힘든 일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그래서
잡은 손 놓지 않고
험한 세상 나란히
보듬고 아끼며
끝날까지
사랑하며 인내하며
함께 가야하는
결코 촌수를 잴 수 없는
무촌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부부란

나로 사는 것이 아닌
너로 살아서
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낯을 살리는
옷매무새로
찬바람을 막기도
부끄러움을 가려주기도 하는
방패막이로 사는
앞단추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영록·시인, 1959-)
+ 부부

두 줄로 늘어선 철길
한쪽 눈으로 바라본다.
두 줄이 어깨동무하고 가다가
하나가 되어 눕는다.

토라져 돌아앉은 그대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본다.
비로소 감은 눈 속으로 들어와
웃는 얼굴로 하나가 된다.
(이재봉·시인, 1945-)
+ 부부요(夫婦謠)

부부란 열 살 줄은 서로 뭣 모르고 살고,
스무 줄은 서로 좋아서 살고,
서른 줄은 눈코 뜰 새 없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 가엾어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등 긁어 줄 사람 없어 산다.
(한국 민요)
+ 부부 그 신비

우연이라 하지 말자
그와 그는
필연이었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 만나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사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오뚝이

잘 다듬으면 보물
던지지는 마라
위험한 폭탄이다
(하영순·시인)
+ 너와 나는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부부

차가운 세파에
얼음처럼 굳어져서
어찌할 바 몰라 하다가도

당신의 미소 앞에
눈 녹듯 녹아 내리는 내 가슴은
어찌 보면 너무도 철없는 아이 같지만

한세상 살아가는 길목에서
서로 만나 화를 낸들 무얼 하며
속절없이 고집한들 무얼 하겠소

하늘 연분으로 맺어져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
속정까지 다 들어
어찌 보면 먼 듯 느껴지는데

당신도 고운 얼굴 주름살지고
내 검은머리 하나 둘
잔설이 내리기 시작하고
자식들도 우리들만큼 커가고
어찌 보면 우리는 닮고 또 닮았소이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부부

허리 굽은 할머니 숨 헉헉 지나갔다
허리 굽은 할아버지도 또 헉헉 지나간다

잽히면 죽일 겨

딱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숨 가쁘게 달려온,
저 거리距離의 팽팽한 긴장이 칠순의 노구를 달리게 하고

내가 놓을까
당신이 놓을까

두렵게, 때로는 안쓰럽게
그렇게 팽팽하게 건너온 생生이었을 것이다
(최을원·시인, 경북 예천 출생)
+ 고무신 두 짝처럼

아버지 밥상 펴시면
어머니 밥 푸시고
아버지 밥상 치우면
어머니 설거지하시고
아버지 괭이 들고 나가시면
어머니 호미 들고 나가시고
아버지가 산밭에 옥수수 심자 하면
옥수수 심고
어머니가 골짝밭에 감자 심자 하면
감자 심고
고무신 두 짝처럼
나란히 나가셨다가
나란히 돌아오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서정홍·시인, 1958-)
+ 자반고등어를 생각하며

시장에서
금슬(琴瑟) 좋은 부부 같은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사왔다
겹쳐있던 몸을 떼어내니
움푹 패인 흔적들이 여기저기
함께 절여졌던 세월만큼
깊게 패여 있다
무엇엔가 눌려도 서로에게 뿐이
줄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다 받아 안은
서로의 상처
시퍼런 속 다 파내고
더 이상 아픔 없는 사랑이 되었다는 말이
입안을 뱅뱅 맴돌지만
말할 수 없었다
금슬 좋다는 말도 아프다

저녁 식탁에 앉아 있는
남편의 등 뒤에서
내 등지느러미를 재어본다
(이성이·시인)
+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되어
방축포 모래밭에서 주워 온
이야기들은 녹슬지 않는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무화과 꽃처럼 아픈 아내야,
내 술잔 속의 바다가 넘쳐
그 모래밭에 숨겨 놓은
우리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해도
그때 그 노래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 몸이 녹슬어 부서진다 해도
내 마음은 당신의 가슴에 뭉쳐
다시는 다시는 흩어지지 않는다.

내 가슴에 고인 당신의 아픔이
이제는 우유 빛 진주가 되어
내가 떠나도 녹슬지 않는다.
(박석구·시인, 전북 임실 출생)
+ 만파식적(萬波息笛) - 남편에게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에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김승희·시인, 1952-)
+ 통일

당신,
당신보다 내 먼저 죽거들랑
우리 아이들에게
내 곁에 함께 합장하여
당신 묻어 달라 부탁하소

난,
내보다 당신 먼저 죽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 곁에 함께 합장하여
날 묻어 달라 부탁할 터이니
(정세훈·시인, 1955-)
+ 메기탕 먹는 부부

말이 없다
집에선들 말이 있는지
메기탕을 먹는 부부는 열심히
메기 뼈를 바르고
커다란 뚝배기를 휘휘 젓는다
좀 더 매웠으면......
그래, 좀 더 매웠으면......
그들이 나눈 말은 고작 두 마디
남자는 연신 약간 비뚤어진 입을 실룩거리고
여자는 이제 오렌지빛깔의 루즈가 벗겨진 입술을
하아하아 거린다
비록 먹기 위해 사는 일이라지만?
비록 살기 위해 먹는 일이라지만?
부디 메기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장안사까지 와서
부디 두 마디를 나누기 위해 장안사까지 와서
부디 계곡의 끝과 끝까지 들어찬 돗자리나 구경하면서
부디 녹음된 염불(念佛)이나 스피커를 통해 들으면서
좀 더 매웠으면 좋을 메기탕이나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사는 게 조금은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며
약수터 산장(山莊)의 처마 끝을 바라볼 때에
웬걸 우리 식탁 메기탕이 도착하였다
앞에 앉은 그와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래, 조금만 더 매웠으면......
맞아요, 조금만 더 매웠으면......
......우리가 나눈 말은 고작 두 마디
(홍수희·시인)
+ 맞벌이 부부

동요를 틀어 놓고
아내는 새벽차를 탔다.
어둠이 채 열리기도 전에
비둘기호 첫차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ㅡ 아이와 나

잠자리를 한가로이 구르며
씩 웃던 돌박이 아이
낯익은 고독에 깨어
혼자서 소꼽놀일 하고
그 소반에 나물을 얹어 아침을 먹고
나도 또 세상 밖으로 떠난다.

ㅡ 아이만 남는다.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부부 쌈

부부라고 어찌 일심동체일 수만 있으랴.
보일 듯 말 듯한 서운함과 껄끄러움까지도
억수같이 퍼붓는다.

부부라고 어찌 사랑의 말만 나눌 수 있으랴.
쌍불 켠 이마에 독설까지
대나무 가르듯 찢어 댄다.

고성과 바가지 깨지는 소리
밤이 이슥해짐에
냉전의 골도 깊어 간다.

상처 나아 격렬한 관심의 어둠 개면
새 아침 동트고
정성스런 식탁엔 다정한 눈길 오간다.

이웃 부끄러워 어쩌나 했는데
다시 살아난 부부 중독증에
뜰 앵두나무도 피익 웃고 있다.
(강신갑·시인, 1958-)
+ 비 오는 날의 부부싸움

아침부터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휴일에는
그리움이 촉촉이 젖어오지만
열린 입은 조심해야 합니다

돈 없이 갈 데도 없는 처지에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아이들 앞에서 다투다가
망신만 당합니다

서로가 최고의 선으로 살아가지만
언제나 쪼들리며 사는 것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저기압으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부부싸움
잘못된 행동이 원인이 아닙니다
말꼬리가 불씨 되어
타오르는 것입니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이런 부부로 살게 하소서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내가 일터 찾아 출근하던 날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이
바뀌어졌음을 서로 인정하며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부부로 살게 하소서

당신은 일 가는 나를 배웅하며
오늘도 힘내 하면서
손 흔들어 주며 당당하게 사는 삶
잔잔한 마음으로 책 읽으며
지나온 삶 반성하며
성격을 온순케 하며
가정의 노동을 이해할 줄 아는 마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상에 된장찌게 끓여내는
자상한 남편이 되는 삶이었으면

나는 그 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경제적 삶을 이끌어 왔는지 몸소 체험하며
돈을 헤프게 쓴 지난 세월 회개하면서
당신의 힘든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당신의 과거를 이해하면서
이제 늙어서 일 해야하는 고생을
담담히 받아 행복으로 승화하는
온유한 아내로 가정 지키는 삶 살았으면

우리 부부의 삶은 바뀌었을지라도
부부 사랑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현실의 환경 속에서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잉꼬부부로 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부부로 살 수 있었으면
서로 사랑하는 맘으로
남은 생 살았으면
(함영숙·시인, 하와이 거주)
+ 부부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그런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 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이크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최석우·시인, 경기도 가평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