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나를 벌거벗기다

어느날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그냥 맨발로 흙을 밟고 걷는다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할 일 없으면 거기에 더 보태서
속옷까지 다 벗은 후에
얼굴 두텁게 뒤집어 쓴 가면부터 벗고
살가죽도 천천히 벗겨내고
내 마음도 벗겨내고
내 정신도 벗겨내고
내 배를 날카로운 칼로 갈라내어
내 속의 심장 허파 창자도 꺼내놓고
세상 부지런히 걸어다니다가
별주부를 멋지게 속인
토끼의 말처럼
바위에 간도 꺼내놓고 말려놓았다가
아프리카 적도
뜨거운 햇빛에 내던져 놓았다가
남극 북극 얼음덩어리 빙하에
사정없이 얼려놓았다가
소금바다에 집어넣었다가
사막의 모래폭풍에 날려보냈다가
심심해지면
프로테우스처럼 독수리에게 조금씩
뜯겨먹히기도 하다가
깨끗하게 빨아놓은 옷 서랍에 집어넣듯이
차곡차곡 제 자리에 밀어넣는다면
아, 해방이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벌거벗는 것이로구나
깨닫는 순간 내 살 내 뼈까지
풍장되어 바람과 함께
흔적없이 사라진 순간이 바로
내가 벌거벗는 것 아닌가
그것이 번뇌 무간지옥 다 거친
해탈이 아니냐
그것이 생과 사의 고개를 넘어가는
열반이 아니냐
그렇게 세상 나들이 하러 간다면 말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니
너는 도대체
누구냐 라고 말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