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조희선의 ´하느님 바보´ 외


<바보 하느님, 바보 크리스천> 조희선의 ´하느님 바보´ 외

+ 하느님 바보

높은 것
낮은 것도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것
싫은 것도 골라낼 줄 모르고
손해
이익 따위 계산할 줄 모르고
네 편
내 편도 만들 줄 모르는
하느님은 바보
오직 하나,
사랑만 아시는
사랑밖에 모르는 하느님, 바보!
(조희선·시인)
+ 바보 하느님

누군가와 동업을 하면
능력과 투자금을 이익분배의 기준으로 삼아
배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익이 나든 손해를 보든
품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파트너십은 오래지 않아 금이 갑니다.

농사꾼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씨앗을 사다가 땅에 심은 후에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농약을 뿌리고,
가을이 오면 추수를 합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땅에
그분의 설계도(게놈)에 따라 만들어진
씨앗을 심고
식물 생육에 필수적인
적당한 수분(비)과 온도(계절 변화),
광합성에 필요한 빛(태양),
실과의 건조(바람)는 무시됩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수많은 곤충도
인간의 이기에 희생됩니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
다 내 것이라고 가지면서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이면
이런 사람과 동업할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해마다 그렇게 당하시고도
또 동업을 합니다.
하느님은
참 바보입니다.
(작자 미상)
+ 바보 예수

오직 바보만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하나로
세상을 바꿔보려고 시도하겠지요.
그렇다면 예수야말로
바보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보들만이 그를 추종하다가 그가 처형당한 뒤에,
그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거예요.
따라서 사도들 모두 바보였다고 하겠습니다.

그 바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같은 바보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모두가 바보라는 그런 말이올시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유식한 학자가 아니라
겸손한 목수를 택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또 어부와 세리를 사도들로 뽑으셨지요.

우리가 과연 그들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도,
복음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과 학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 모두 바보임을 기꺼이 시인합시다.
그러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에
마음놓고 몸을 던질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사도들도 때로는 겁에 질리고
비굴하게 처신하지 않았던가요?
우리 또한 그들처럼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할만한 사건이지요.
그래도 그분의 부활은 우리에게 초인적인 용기를 제공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교부, 347-407년)
+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어떤 일이 있어도 늙어서는 안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젊어야 합니다
싱싱하게 젊으면서도 깊어야 합니다
바다만큼 되기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두세 키 정도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마소의 타는 목까지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
흥건히 솟아나는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높은 하늘이야 쳐다보면서
마음은 넓은 벌판이어야 합니다
탁 트인 지평선으로 가슴 열리는
벌판은 못돼도 널찍한 뜨락쯤은 되어야 합니다
오가는 길손들 지친 몸 쉬어갈
나무 그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덥석 잡아주는 손과 손의 따뜻한
온기야 하느님의 뛰는 가슴이지요
물을 떠다 발을 씻어주는
마음이야 하느님의 눈물이지요
냉수 한 그릇에 오가는 인정이야
살맛 없는 세상 맛내는 양념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좀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야 주는 일이 즐거우려면
좀 바보스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보스런 하나님의 바보들이여
(문익환·목사 시인, 1918-1994)
+ 나는 바보라서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 말을 잘 믿습니다
믿었다가
혼이 많이 나고 보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더러 바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내 속내를 보이지 말아야지
했다가
내게 말하는 사람의 말이 정말 같아서
꽁꽁 숨겨 놓았던 것까지 다 보여주고 나면
역시 소리도 없이 비웃으며 가버리고
나는 다시 바보가 됩니다

그대로 바보로 살아도 좋은데,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 내게 와서 내 속내를 묻지 않을 테니 괜찮은데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물을까봐 겁이 납니다

정말
내 맘을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며
나와 함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이번엔
내가 바보가 아니라고
제법 나도 똑똑해졌다고
마음에 빗장을 하나 더 질렀다가
그가 떠나갈까 두렵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나처럼 상처를 입고
나도 바보였구나, 이번에도 바보였구나
그렇게 아파할까봐
내가 그런 상처를 줄까봐 겁이 납니다

하느님
저는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해 주십시오
조금 더 많은 자비를 베풀어주시려거든
제가 참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지혜를 주십시오
하지만 제가 바보가 되는 편이
하느님 뜻에 맞는다면
그대로 바보로 남겨 주십시오
저의 상처받는 마음을
하느님께서는 알아주실 테니
행복한 바보가 되겠습니다
(최석우·시인, 경기도 가평 출생)
+ 바보

조금씩은 이래저래
바보가 되어 살고
바보가 못되면
반바보나 되어 살고
반바보도 못되면
온바보나 되어 살고
잘난 사람
잘나게 살라 하고
바보는 바보다이
분수 맞게 살 일.
잘난 사람 극락 가는데
바보인들 왜 못 가랴
잘난 사람 천당 가는데
바보인들 왜 못 가랴.
이마 푸른 바보는 복이 있나니.
넘어져도 자빠져도 복이 있나니.
(신동집·시인, 1942-)


+ 바보 천국 가다 - 배삼룡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비실이 배삼룡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

웃으면 복이 와요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어지고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희극계의 대부
비실이 배삼룡

힘들고 지친
우리 가슴에
시원한 청량음료를
웃음이라는 여유를
심어준 바보 배삼룡

바보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준
큰 별 배삼룡 지다

바보가 절실히 필요한
이 시대
바보의 원조
이젠 전설이 되었다.
(이문조·시인)
+ 바보가 바보에게

우린 돈을 잘 모르고
세상 지위에도 관심이 없고
좋은 음식 좋은 옷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지요

특히 교만이나 아집
시기나 분노
이러한 것도
자존이나 탐욕이 별로 없으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요

그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을 열고 새소리를 듣지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가지요

길가는 이웃에게
˝어머 오늘은 얼굴이 밝아 보여요!
무슨 좋으신 일이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님이 보내준 커피 한 잔
아침햇살을 받으며 가볍게 몸을 데우지요

우린 늘 누구에게나 손해를 보며 살지요
그래도 희죽 웃는 마음은
아파하기보다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뭘!˝
런답니다.

그래도 한세상 살아가는데는
이 마음 버리고 싶지 않아요
내게 주어진 것 모두 없어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나를 닮은 바보가 있잖아요
그 바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나는 평생 이 바보의 길을 갈 거예요
설령 그 바보가 계산물이 들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길을 갈 거예요

세상사람 전부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다녀도
나는 내 마음의 정원에 꽃을 심고
바다향기를 내 발등에 뿌리며
그냥 황톳빛 이 길을 갈 거예요
별로 날고 쉽지가 않거든요
바보는 머리가 나빠서 피곤한 일은 싫어하거든요
계산이 복잡하면 아주 싫어요
그냥 바보로 살다
죽고 싶어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것 어디다 쓰죠?
내게도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런 순수에의 고집은 있답니다.

호호호호!
그대도 내 손을 꽉 잡고
바보걸음을 걸어봐요
세상물결 위를
느릿느릿 웃으며 걸어봐요
마음이 무거우면 세상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답니다
그러니 가볍게 걸어봐요
내 손을 더욱 꽉 잡고!
(유국진·시인, 경북 영덕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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