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5일 화요일
윤곤강의 ´아지랑이´ 외
<아지랑이에 관한 시 모음> 윤곤강의 ´아지랑이´ 외
+ 아지랑이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윤곤강·시인, 1911-1949)
+ 아지랑이
강 건너엔
화롯불에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모락모락
갓난아기
목욕을 씻기는지
포올 포올
할미 손자
옛날얘기를 하는지
아롱아롱
수건 두른 농부
파밭을 파는지
송글송글
수리수리
주문을 외웠는지
살랑살랑 부산하다
(김순진·시인, 1961-)
+ 아지랑이
아롱아롱 아지랑이
가물거리고
아기 꽃 파아란 잎이
살랑 춤추면
산을 넘고 등을 넘는
개나리 향기
나폴 나폴 너울 쓰고
한 쌍의 나비
두 날개 활짝 펴고
고이 앉지요.
(서경 김대원·시인)
+ 아지랑이
닫혀 있던 자궁의 문이 열리고
흙의 단단한 허벅지가 조금씩 벌어진다
무엇인가 서서히 몸을 틀며
빛을 향해 나오려 한다
입에서 코에서 머리끝에서까지
산마다 언덕마다 골짜기마다
황홀한 진통이 시작되면서
아른아른 하늘로 땅으로
파문을 그리며 기운을 떨친다
큰북 작은북 울리는 고동鼓動의 메아리로
태동胎動이 폭발을 예비한다
머잖아 방방곡곡
산실이 마련되겠다
아기 울음소리가 요란하겠다.
(고정애·시인, 전남 목포 출생)
+ 아지랑이
봄이 오는 기별을 어디서 들을까?
궁리만 하겠는가
느릿느릿 길을 나섰지
내친김에 가지산이나 오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바로 꾀나서 석남사 미처 못 가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주저앉고 말았지
흐르는 물이야 언제나 맑아서
손바닥 안에서도 마음을 비추는데
문득 불끈한 것이 찌르르 번지고 있었지
사랑에 빠진 날처럼 갇힌 것을 알았네
건너 산 연둣빛이 막 덤벼들고
누가 대중없이 불을 놓았나 불을 놓았나
봄길을 따라가며 꼽아보는 재미로
눈이 가는 자리마다 손내밀어 인사하기
그것을 가로막는 불꽃무늬를 보았네
형체 없는 것이 침범해 오면 무슨 수로 배기나
신나서 우쭐거리다가 느긋이 돌아보는
분명히 앞선 기운이 이글이글 살아 있었네
(강세화·시인, 1951-)
+ 아지랑이調
문득 눈을 드니
사방에 임의 얼굴
일어서 붙잡으면
오지랖도 잡히리만
그 사이 잠긴 눈 밀고
눈물 한 줄 주르르
떠나며 버린 정 저도 한스러웠나
차마 못 떨쳐 맴도는 허깨빈가
어릿어릿 현기증에 내가 까무러친다
마침내 미치고 말면
오히려 고마운 일
핏자국 진 산비탈에
바람기도 숨죽였다
필릴리 진혼곡조에
잠이 드는 봄아 봄아.
(유안진·시인, 1941-)
+ 아지랑이
봄 속에
꽃 속에
돌아와 웃는
그대는
누가 보낸
사랑의 삽화
(정숙자·시인)
+ 아지랑이
먼발치에서
지켜보기가
하도 안타까워서
가까이
가까이
다가와 보니
먼발치에서
보기보다
더욱 멀어진
가깝고도 먼
알 수 없는
내 사랑
(김옥남·시인, 1952-)
+ 아지랑이
저렇게 멀고도
희미하게
반짝이며 다가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늘도 햇살은 여전한데
한 차례 봄비처럼 왔다간
한줄기 바람으로 흩어지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렇듯 멀고도
이리도 가까이에서
내 마음 훔쳐 가는 당신
꿈이여 사랑이여
성홍열 같은
내
행복의 이중간첩이여
(전병조·시인)
+ 아지랑이
가파른 보릿고개 넘어
부황 든 얼굴로 어질어질
동구 밖 한길까지 따라와
눈물 그렁그렁 배웅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여 가, 내 걱정 말구
―가서 몸 성히 공부 잘허구
아직도 가물가물 손 흔드신다.
(임영조·시인, 1943-2003)
+ 아지랑이
공장에
보내놓고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누이여라
(주근옥·시인, 충남 논산 출생)
+ 아지랑이처럼 살아요
그래도 가끔은 내 생각도 하면서
더러는 이 근처를 지나기도 하겠지요.
달빛 떠나 헹궈서 가라앉은 웃음으로
아지랑이처럼 살아요, 나는.
예전의 불길은 고운 재로 덮어서
예전의 원망은 물살에 흘려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려요
아지랑이처럼 끄덕거려요.
세월이란 무서워요,
세월 덕분이지요.
아지랑이처럼
아지랑이처럼
내가 살아요.
(이향아·시인, 1938-)
+ 아지랑이
이렇게 기막힌 봄은 처음이네요.
실연으로 꽁꽁 언 내 겨울
뺨을 마구 때리고
미안해, 미안해 하며
꽃 마구마구 피어오르고
내 뺨 흐르는 눈물까지 훔쳐가
안 그럴게, 다신 안 그럴게 하며
얼음 강물 녹여 몸 푸니
어이없을 밖에요.
참으로 난감할 밖에요.
내 가슴속 여전히 눈 내리고
매서운 칼바람 들이치는데
머리 위로 봄바람 살랑대며
남실대는 햇빛 가득 쏟아놓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건지.
내 마음 겨울이고 내 몸은
봄 속에 턱 하니 놓여지니까
환장할 정도로 어지럽네요.
몇 발자국 걸어만 가도
여기저기 픽픽 쓰러지는 제 꼴이
미친 여자 진달래 머리 꽂고 산에서
춤추며 내려오는 바로
그 아지랑이네요.
(김하인·시인이며 소설가, 1962-)
+ 보았는가, 아지랑이
시나브로
도타워지는 눈길 탓에
마냥 설레는구나
은근한 입김으로
방심이 드러난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잠시 걸음 멈추어라
들숨 한번 크게 쉬면
꿈결인가 하리니
어지러운 세상이여
날뛰지들 말아라
어름어름하여도
일깨움 있으리니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