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극락에 서다

성혈사 나한전의
밤 꽃살문 열어젖히니
연꽃 속에서 다투어 튀어나오는
용과 기러기와 물고기
계단을 오르는 동자승이
용의 꼬리를 밟는다
허공의 백여덟 번째 기러기는
무릎 꿇고 절을 하는데
번쩍 동이 터 오고
법문의 햇살이 쏟아진다
극락이 저만큼 있어서
손과 발을 내던졌다
내가 당신에게 내밀었던 꽃이다
꽃 진 자리가 佛이다
활활 불 타오르는
무덤의 화로 속에 있어서
극락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리라
살과 뼈가 순식간에 녹아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난다
생의 갈증 이겨내는
한 모금의 물로만 살았으면
그리하여 내게 몸이 없어서
극락에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에
하룻밤 꼬박 전생을 새겨놓았다
극락이었다
어둠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꽃을 밟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