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일요일

김시태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외


<크리스마스에 관한 시 모음> 김시태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외
+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희미한 고향집과 어머니,
그 개구쟁이들,
그들을 도로 돌려주소서.
조그만 카드 속에 정성을 담던
그 소년들도 돌려주소서.
첫아이 보았을 때 기도 드리던
그 아빠와 엄마도 돌려주소서.
아이들과 손잡고 이야기하며
성당을 찾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한번 더 그 종소리 듣게 하시고
눈 내리는 아침을 걷게 하소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소서
(김시태·시인, 1940-)
+ 크리스마스와 우리집

동청 가지에
까마귀 열매가 달리는
빈 초겨울 저녁이 오면
호롱불을 켜는 우리 집.

들에 계시던 거친 손의 아버지.
그림자와 함께 돌아오시는
마을 밖의 우리집.

은접시와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없어도,
웃는 우리 집.
모여 웃는 우리 집.

소와 말과
그처럼 착하고 둔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 우리 집.

우리 집과 같은
베들레헴 어는 곳에서,
우리 집과 같이 가난한
마음과 마음의 따스한 꼴 위에서,

예수님은 나셨다,
예수님은 나신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동청(冬靑) : 사철나무
+ 아기 예수 나심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우리들 오늘 누구나
스스로의 삶의 의미 스스로가 모르는
흔들리는 믿음과 불확실한 소망
사람이 그 말씀대로
사랑할 줄 모름으로 불행한 이 시대
어둡고 외로운 쓸쓸한 영혼을 위해서 오시네.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우리들 오늘 이 세계
눌린 자와 갇힌 자
빈곤과 질병과 무지에 시달리는 자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
진리와 그 의를 위해 피 흘리는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해 오시네.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그 십자가
우릴 위해 못 박히신 나무틀의 고난
사랑이신 피 흘림의 영원하신 승리
죽음의 그 심연에서 부활하신 승리
성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구세주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늘 오시네.
(박두진·시인, 1916-1998)
+ 성탄절을 앞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내외가
돋보기를 서로 빌려가며
성경을 읽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마태복음 1장 2장
읽을수록
그 신비
그 은총
너무나 감사해요.
아멘.
그리스도의 탄생 안에서
우리는 거듭나고
차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이 연령에
범죄할 리 없을 것 같다.
그럴수록 남은 여생을
얼룩 없이 살기를 다짐하며
우리들의 앞길에도
순결한 축복의 눈이 쌓이고
깨끗하기를 간구한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가까왔군요.
그렇군.
올해 성탄절에는 성가대에 끼어
우리도 큰 소리로
구주 예수 오셨네를 부르며
골목을 누벼볼까요.
함박눈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성탄절 새벽의
경건한 아침 공기가
방 안에 서려왔다.
(박목월·시인, 1916-1978)
+ 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내가 어렸을 그 옛날같이.

초롱불 밝히며 눈길을 걷던
그 발자욱 소리, 지금 들려온다.

오, 그립고나, 그 옛날에 즐거웠던,
흰 눈을 맞아가면서
목소리를 돋우어 부르던 캐럴

고운 털실 장갑을 통하여, 서로
나누던 따사한 체온.

옛날의
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박화목·시인, 1924-2005)
+ 성탄 편지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
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

슬픈 이를 위로하고
미운 이를 용서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
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
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
먼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

죄가 많아 숨고 싶은
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
기도로 봉헌하며
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
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
우리도 성모님처럼
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
그 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해요.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아기예수의 탄생과 함께
갓 태어난 기쁨과 희망이
제가 그대에게 드리는
아름다운 새해 선물인 것을….
(이해인·수녀, 1945-)
+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나태주·시인, 1945-)
+ 성탄빛

해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반짝이는 카드에도
한 아름의 선물에도
우리 아기님
뵈올 수 없네

거룩한
아기 예수 어디
나셨을까

내 마음의
별 따라 가보자

도시의 외양간을
찾아서 가보자
냄새나고
축축한 외양간을
찾아서 가보자

마음이 억눌린 이여
고달픈 육신 갇혀있는 이여
가난으로 촛불 한 자루
준비하지 못하는 이여

축제의 날엔
두 배로 슬퍼지는 이
지금 마음이 가장
쓸쓸한 이여

그대 맘을 찾아가
경배하리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곳에 우리 아기
오시리
(홍수희·시인)
+ 크리스마스의 추억

어쩌다 친구 꾐에 빠져
예배당 관사 높은 지붕에 올라간
날 두고 사다리를 치워 버린
친구가 원망스러웠을 때

혹여 예배당 지붕 위에서
이름 없는 귀신이 될까
두려움에 겁도 없이 지붕 밑으로 뛰어
고공 법을 구사하든 어린 시절

할머닌 늘 그랬다
˝예배당이 니 할애비 집이냐?˝라고
그러면 나도 속이 상해서 꼬박
˝네 할애비 집 맞는데요!˝
되받아치던 유년

꼭 크리스마스 즈음만
교회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 년 중 그때가 가까워지면
언제나 예배당을 기웃거렸다

정말 크리스마스에 나눠주던
사탕과 따끈한 빵이
그리워 간 것은 아니었다

여름날은 맨드라미가
붉은 얼굴로 깔깔거리고
봉선화 채송화도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있던
그래서 늘 예배당은 내게 많은
신비를 지닌 비밀한 정원이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이 달린 트리와
무대 위 올려지던 다윗 이야기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거룩한 이야기들

내 유년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내게 행복을 선물하는 요람이었다
꼭 빵이 그리워 사탕이 그리워
예배당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고은영·시인)

+ 첫 번 크리스마스

너무 어두워
길 못 찾고
아우성 소리로만 가득하던
땅에
주께서
빛 되어 내리시다
소리 없이 내리시다
(임종호·목사 시인)
+ 라스트 크리스마스

깨어나라
베들레헴의 구유
성녀의 넝마여
동방박사의 지팡이여
휘황 야릇한 십자가
아리송한 캐럴이여
부디 깨어나라
인색한 눈발
대답 없는 기도
희미한 별빛이여
썰렁한 자선냄비여
배부른 자의 독식
가난한 자의 읍소여
탐욕으로 얼룩진
크리스마스의 탑에서
깨진 종이 우짖는다
제발 깨어나라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성탄절의 기도

주여 지난 날 헛되이 보낸 성탄절을 용서하시고
올해는 성탄의 의미를 바로 새기게 하소서.
왕궁이 아닌 누추한 말구유에 임하신 까닭을 알게 하소서.
가난한 목동의 인사를 먼저 받으신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인류의 죄를 십자가로 보속하기 위해
가장 낮고 누추한 곳으로 오신 예수님
영광이 아닌 가난과 고통을 받으러 오신 예수님
저도 당신과 함께 낮은 곳으로 임하게 하소서.

헛된 욕망을 비우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
아기 예수님 모실
정결한 말구유 하나 마련하게 하소서.
비움과 나눔과 겸허한 마음으로
기쁘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어려운 이웃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소서.

오소서 아기 예수님!
내 마음에 오소서.
간절히 비오니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진장춘·시인)
+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위한 사랑의 기도

성탄의 종소리
온 누리의 축복으로 울려 퍼질 때
미움과 미움은
용서의 강물로 흐르게 하시고
마음과 마음은
기쁨의 합창으로 메아리치게 하소서

하늘의 은총
지상의 눈꽃으로 피어날 때
욕심과 불만은
눈처럼 하얗게, 가볍게 하시고
행복과 행복이
감사의 꽃으로 찬란하게 하소서

평화의 메시지
온 누리의 숭고한 빛으로 은혜로울 때
스스로 비우고 낮아지는
겸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비로소 화합으로 하나 되는 세상
사랑과 사랑으로 가슴 벅찬 희망이게 하소서
(이채·시인)
+ 크리스마스에게 띄운 편지

지난 일 년 동안 모아온 햇빛과 꽃과 강 풍경을 담아 보내드립니다. 허틈 없이 아껴아껴 모아온 제 미소와 웃음소리, 그리움을 보내드립니다. 이것을 가지고 당신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꾸미세요. 당신 마음을 따스하고 빛나게 해줄 장식으로 써주십시오. 당신이 샴페인을 터뜨리는 창가에 홀로 서서 촛불 모아들고 전 당신 행복함을 기뻐하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한 사람이 어둠을 지켜내는 것만큼 한 사람이 불빛처럼 따스해지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기에 두 사람이 행복하기에 모자라는 기쁨이라면 오롯이 전 당신이 제 기쁨을 아낌없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빛과 함께 태어나고 웃음소리 속에서 당신 은종이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당신 파티가 끝난 뒤 제 눈물 한 방울도 묻어 있음을 눈치 채주셨으면 합니다.
일 년 내내 당신만을 지켜보다가 맺힌 눈물 중에 한 방울입니다. 그 이외엔 크리스마스 전부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당신 충만될 수 있다면 전 성탄 트리가 되어 당신 창문 밑을 밤새워 지킬 겁니다. 이렇게 당신 가까이 있고 당신을 제가 사는 이 세계 한 모퉁이에 보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모를 제 사랑을 자축합니다.
제가 당신의 크리스마스입니다.
(김하인·시인이며 소설가,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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