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막연한 기다림

막연한 기다림으로 회색빌라는 졸고 있다
반쯤 돌아서서 가던 사람이
높아진 담벼락 너머 나목의 외침을 듣고 멈춰 서서
코끼리같이 커져버린 귀를 기울인다
콘크리트 무거운 바닥 아래
흐르는 물 소리 듣고 있는 것일까
몇 겹 지층 속으로 스스로 길을 내어 흐르는 지하수
꿈의 상념 또는 상념의 꿈
새와 물고기를 부르는 비유의 시어를 노래 부른다
낮으마한 숨결을 즐기는 운명으로
아직 비유가 되지 못한 이들은
희망 또는 절망의 화살을 쏘아대는 데
지구의 옆구리는 빛 또는 피로
눈부시거나 끈적거린다
그러한 중에도 기다림은 추억의 빛가루로 쌓여간다
반쯤 돌아서서 가던 사람의
양복 단추를 노랗게 물들이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하는 사랑같은
시간의 웅덩이에 한 번 발을 들인 사람들은
가로등이 졸도록 집으로 돌아갈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