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기다림으로 회색빌라는 졸고 있다
반쯤 돌아서서 가던 사람이
높아진 담벼락 너머 나목의 외침을 듣고 멈춰 서서
코끼리같이 커져버린 귀를 기울인다
콘크리트 무거운 바닥 아래
흐르는 물 소리 듣고 있는 것일까
몇 겹 지층 속으로 스스로 길을 내어 흐르는 지하수
꿈의 상념 또는 상념의 꿈
새와 물고기를 부르는 비유의 시어를 노래 부른다
낮으마한 숨결을 즐기는 운명으로
아직 비유가 되지 못한 이들은
희망 또는 절망의 화살을 쏘아대는 데
지구의 옆구리는 빛 또는 피로
눈부시거나 끈적거린다
그러한 중에도 기다림은 추억의 빛가루로 쌓여간다
반쯤 돌아서서 가던 사람의
양복 단추를 노랗게 물들이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하는 사랑같은
시간의 웅덩이에 한 번 발을 들인 사람들은
가로등이 졸도록 집으로 돌아갈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