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약해지지마!´ 외


<99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 시 모음> ´약해지지마!´ 외

+ 약해지지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 아들에게

아들아!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를 떠올리렴

누군가와
맞서면 안돼
나중에 네 자신이
싫어지게 된단다

자 보렴
창가에 햇살이
비치게 시작해
새가 울고 있어

힘을 내, 힘을 내
새가 울고 있어
들리니? 겐이치
+ 비밀

나 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그렇지만 시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격려 받으며
이제는 더 이상
우는소리는 하지 않아

아흔 여덟 살에도
사랑은 한다고
꿈도 꾼다고
구름이라도 오르고 싶다고.
+ 아침은 올 거야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해가
비출 거야.
+ 살아갈 힘

구십 세를 넘긴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네
+ 나

구십 세를 넘긴 뒤
시를 쓰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보람있습니다
몸은 여위어
홀쭉해졌지만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불 수 있고
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입은 말이죠
˝달변이시네요˝
모두가 칭찬해줍니다.
그 말이 기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요
+ 너에게

못한다고 해서
주눅들어 있으면 안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서서
뭔가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 바람과 햇살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과 햇살이
몸은 어때?
마당이라도 걸으면 어때?
살며시 말을 걸어옵니다.

힘을 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영차´하며 일어섭니다.
+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내가 대답했네
애쓰지 말고
편하게 가는 게 좋은 거예요
모두 같이 웃어댄
오후의 한때
+ 외로워지면

외로워질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
그 온기는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힘낼게요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
+ 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의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해줬다고
기쁜 듯이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정성껏
97세인 지금도
화장을 하고 있지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 나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부부가 오는 날이랍니다.
혼자 산 지 18년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 답장

바람이 귓가에서
˝이제는 슬슬
저 세상으로 갑시다˝
간지러운 목소리로
유혹을 해요
그래서 나
바로 대답했죠
˝조금만 더 여기 있을 게
아직 못한 일이
남아 있거든.˝
바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스윽 돌아갑니다.
+ 행복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내가
빛나고 있습니다.
+ 저금

나는 말이에요.
사람들이 친절히 대해줄 때마다
마음속에 저금해두고 있어요.

외롭다고 느낄 때는
그것들을 꺼내
힘을 내지요.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요.
연금보다 나을 테니까요.
+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양 갈래 머리를 한 내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
끝없이 넓은 유채꽃밭
92세인 지금
눈을 감고 보는
한때의 세계가 정말 즐겁구나
+ 어머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 추억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 96세의 나

시바타씨
무슨 생각하세요?
도우미가
물었을 때
난처했습니다.
˝지금세상은
잘못되었어
바로 잡아야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 말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수정을 하지
+ 잊는다는 것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가는 것의 행복
잊어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소리가 들려오네.
(시바타 도요·일본 시인, 1912-)
*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인 2010년 첫 시집 『약해지지마』(じけないで) 발간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