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박성룡의 ´풀잎´ 외


<풀잎에 관한 시 모음> 박성룡의 ´풀잎´ 외

+ 풀잎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시인, 1932-2002)
+ 풀잎

나는
풀잎을 사랑한다.
뿌리까지 뽑으려는
바람의 기세에도
눈썹 치켜올리는
그 서릿발같은 마음 하나로
참고 버티는

풀잎을
나는 사랑한다.

빗물에 휩쓸려간 자국도
푸르게 메워내고
겨울에 얼어죽는 부분도
입김을 불어넣고
뺨을 비벼주어
다시 푸르게 살려내는

풀잎을
나는 사랑한다.

아침이면 이슬을 뿜어 올려
그 이슬 속을
새소리 왁자하게 밀려나오게 하고
착하디착한 햇빛을 받으러
하늘로
올려보는 조그만 손
풀잎을 나는 사랑한다.

가만히 허리를 일으켜 세워주면
날아가고 싶어
날아가고 싶어
바람에 온 몸을 문질러 보는
초록빛 새

풀잎을
나는 사랑한다.
(이준관·시인, 1949-)
+ 풀잎은

풀잎은
씨앗이 모진 추위를 견디라고
딱딱한 껍질을 덮어 주지만

봄이 오면
새싹이 될 씨눈 하나를
씨앗 속에 몰래 감추어둔다.

풀잎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작고 부드러운 것만이
딱딱한 땅을 헤치고 올라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재동·시인, 1949-)
+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향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람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풀잎은
바람의 향기를 사랑할 뿐
절대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풀잎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의 향기를 사랑하고도
그 바람에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무화·시인)
+ 예쁘게 살아가는 풀잎이 되어요

우리 아름답게 일어서는 풀잎이 되어요
바람찬 날 강 언덕 아래 웅크려
세월의 모가지 바람 앞에 내밀고
서럽게 울다가도
때로는 강물 소리 듣고
모질게 일어서는 풀잎이 되어요
누가 우리들 허리 꼭꼭 밟고 가도
넘어진 김에 한 번 더
서럽게 껴안고 일어서는
아니면 내 한 몸 꺾어 겨울의 양식 되었다가
다시 새 봄에 푸른 칼날로 서는
우리 예쁘게 살아가는 풀잎이 되어요
(공광규·시인, 1960-)
+ 셋방살이

풀잎이
전세를 놓았다

풀벌레가
전세를 얻었다

풀잎은
전세 값으로 노래를 받아
날마다 기뻤다

풀벌레는 전세 값으로
노래를 주어
날마다 즐거웠다.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
풀잎 끝에 햇살 오오 풀잎 끝에
나 풀잎 끝에 당신 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 잠시 반짝이네
잠시 속에 해가 나고 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 그러나 풀잎 끝
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
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이승훈·시인, 1942-)
+ 비에 젖은 풀잎을

비에 젖은 풀잎을 밟고 오시는 당신의 맨발
빗소리와 빗소리 사이를 빠져나가는 당신의 나신
종아리에 핏빛 여린 생채기 진다.
가슴팍에 예쁜 핏빛 무늬가 선다.
(나태주·시인, 1945-)
+ 풀잎으로 나무로 서서

내가 풀잎으로 서서 별을 쳐다본다면
밤하늘 별들은 어떻게 빛날까.
내가 나무로 서서 구름을 본다면
구름은 또 어떻게 빛날까.
내가 다시 풀잎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내 다시 나무로 서서 나를 본다면
나는 진정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걸어갈까.
내가 별을 쳐다보듯 그렇게 어디선가
풀잎들도 별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듯 그렇게 어디선가
나무도 나를 보고 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풀잎

나직이 부르는 노래가
진정 노래예요
거센 함성 없지만
끊어질 듯 살아오는 그 끈질긴
힘의 목소리예요
빛이예요
온 천하가 어둠에 갇혀
방향 없이 바람에 밀려도
눈물로 일어서는 소리
우리 긴 기다림의 서러움이
진정 새로움의 노래예요
(김종우·시인, 196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창건의 ´풀의 말´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