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천양희의 ´희망이 완창이다´ 외
<희망에 관한 시 모음> 천양희의 ´희망이 완창이다´ 외
+ 희망이 완창이다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희망이 완창이다
(천양희·시인, 1942-)
+ 희망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정희성·시인, 1945-)
+ 희망
미루나무 세 그루,
까치집 하나,
마른풀을 씹으며 겨울을 나는
검정염소 몇 마리,
팔짱을 끼니 나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태주·시인, 1945-)
+ 칠월, 복도에서
열여덟 살
여학생들의
앞가슴이
점점 부풀어오른다
뭐라 해도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
(나기철·시인, 1953-)
+ 소망
비가 멎기를 기다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해를 보는 거예요
푸른 하늘이 얼마나 넓은가는
시로써 재며 사는 거예요
밤에 뜨는 별은
바다 깊이를 아는 가슴으로 헤는 거예요
젊어서 크던 희망이 줄어서
착실하게 작은 소망이 되는 것이
고이 늙는 법이에요
(김광섭·시인, 1905-1977)
+ 희망
내일의 頂上을 쳐다보며
목을 뽑고 손을 들어
오늘 햇살을 간다.
한 시간이 아깝고 귀중하다.
일거리는 쌓여 있고
그러나 보라 내일의 빛이
창이 앞으로 열렸다.
그 창 그 앞 그 하늘!
다만 전진이 있을 따름!
하늘 위 구름송이 같은 희망이여!
나는 동서남북 사방을 이끌고
발걸음도 가벼이 내일로 간다
(천상병·시인, 1930-1993)
+ 희망의 거처
옥수숫대는
땅바닥에서 서너 마디까지
뿌리를 내딛는다
땅에 닿지 못할 헛발일지라도
길게 발가락을 들이민다
허방으로 내딛는 저 곁뿌리처럼
마디마디 맨발의 근성을 키우는 것이다
목 울대까지 울컥울컥
부젓가락 같은 뿌리를 내미는 것이다
옥수수밭 두둑의
저 버드나무는, 또한
제 흠집에서 뿌리를 내려 제 흠집에 박는다
상처의 지붕에서 상처의 주춧돌로
스스로 기둥을 세운다
생이란,
자신의 상처에서 자신의 버팀목을
꺼내는 것이라고
버드나무와 옥수수
푸른 이파리들 눈을 맞춘다
(이정록·시인, 1964-)
+ 희망의 바깥은 없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이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도종환·시인, 1954-)
+ 희망학습
총탄이 몸에 명중했다
살을 꿰뚫는 얼음번개의 얼얼한 상처
한데 죽지 않았다
머리에 총 맞지 않았으니
아직 살아 있고
생각하는 일 가능하리라
가슴에도 총 맞지 않았으니
아직 살아 있고
사랑하는 일 가능하리라
이런 까닭으로
한국인들
다시금 희망의 학습을 시작했다.
(김남조·시인, 1927-)
+ 희망을 자주 발음하는 이유
희망 하고 발음을 한다
벌어진 꽃잎이 잘 여문
씨앗 몇 톨 움켜쥐듯
내 입술은 피어나는 꽃잎이 된다
끝하며 앙 다물어지는 입술과는 달리
마앙 하며 벙긋이 벌어진 입 속으로도
무언가 다시 들어 올 것만 같다
희망 희망 하다보면
잿빛 울타리를 벗어난 내가
장미정원에서 열린 파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
포물선을 그리던 주식이
수직상승 하기도 한다
희망 하고 길게 발음을 한다
판도라의 상자와
못 다한 사랑
새벽하늘의 별 하나가 내 앞을 스친다
누가 내게
˝희망적이야˝라고 말을 해도
내 입 끝은 6월의 모란꽃만큼 벌어진다
(김선호·시인)
+ 승화(昇華)
겨자씨만큼
작은 사랑
점점 자라나
온 세상 뒤덮는 걸 보았는가
한 슬픔 위로
조그만 기쁨이
점점 자라나
도도한 기쁨의 강물 되는 걸 보았는가
한 절망 위로
조그만 희망이
점점 자라나
울창한 희망의 숲 이루는 걸 보았는가
기쁨은
슬픔에서 자라고
희망은
절망에서 자라는 것
슬픔과 절망에
괴로워 말자
슬픔도 따뜻하게 품에 안자
절망도 따뜻하게 품에 안자
(최일화·교사 시인)
+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
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은
눈물을 사랑한다.
바닥엔 가시가 깔려 있어도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방처럼 아늑할 때가 있다.
이제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차라리 다시 일어서서
오를 수가 있어 좋다.
실패한 사랑 때문에
실패한 사업 때문에
실패한 시험 때문에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용기와 희망이다.
(남낙현·시인, 1956-)
+ 절망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면
벼랑 아래
까마득한 낭떠러지만 내려다보이네
더듬어더듬어 벼랑 위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바위틈에 피어난 들꽃을 만져보자
바위와 바위 틈새
위태롭게 뻗어 나온 늘 푸른 소나무를
얼싸안아 보자
절망은
절망하는 이에게만 친절한 것,
더 높이 더 높이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자
절벽보다 더 높이
슬픔보다 더 높이
적어도 네 자신보다 더 높이
마침내
당신의 마음은 독수리처럼,
절망의 폭풍 위로 솟구치리라
솟구쳐 용기와 희망을 낚아채리라
그리하여 진실로 사랑에 닿으리
(홍수희·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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