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일 토요일

임보의 ´돌의 나이´ 외


<돌 시 모음> 임보의 ´돌의 나이´ 외

+ 돌의 나이

어느 고고학 박사가
땅 속에서 석기를 하나 찾아냈다
몇 만 년 전 것이라고 했다

길을 가다 나도
돌멩이 하나 집어들었다
몇 백만 년 전 것이 아닌가?
(임보·시인, 1940-)
+ 생각하는 사람

나도 다음 세대엔 돌로 태어나렵니다.
한 번 앉으면
한 생각으로
몇 백년을 넘나드는
그런 돌로 태어나렵니다.

생각하는 사람
조각 앞에서
생각 안 하는 사람들이
돌처럼 서서
구경합니다.
(송호일·시인)
+ 돌

돌은 침묵의 덩어리
발효된 고요
돌 속으로 영성의 길 비친다

돌의 몸으로 지상에 와서
푸른 밤 창호지 같은 생각 파가다가
어디서 사라졌을까
그 푸른 눈
어디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로 듣는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밤
새파랗게 깨어있는 돌
(이관묵·시인, 1947-)
+ 돌

연못가에 돌 하나를 갖다 놓았다
다 썩은 짚가리 같이 어둡기도 하고
퇴적되어 생긴 오묘한 결과 틈이
꼭 하느님이 자시다 만 시루떡 같은
충주댐 수몰지역에서 나왔다는 돌,
어느 농가 두엄더미에 무심히 서 있다가
몇 십 년만에 수석쟁이의 눈에 띄어
수석가게 뜰에서 설한풍 견디던 돌,
이끼와 바위솔이 재재재재 자라고
나무뿌리도 켜켜이 엉켜있다
화산과 지진이 지구를 뒤덮고 난 후
태고의 적막을 가르며 달려온 돌,
비 오면 비에 젖고 눈 오면 눈을 맞는
저 아무렇지도 않은 껌껌한 돌을
고즈넉이 바라보는 일은 쏠쏠하기만 한데
물을 주면 금세 파랗게 살아나는 이끼!
검버섯 많은 내 몸에도
무심결에 파란 이끼나 돋아나면 좋겠다
(오탁번·시인, 1943-)
+ 돌

돌이 되고 싶다
잘난 구석 하나 없어도,
세월의 강물에 모난 곳 닦고
둥글둥글 묵묵히 제자리 지키는
수많은 돌 중의 하나이고 싶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그곳에서
지나가는 가을바람 동무 삼아 놀다가
땅위로 기는 것들 쉬어 가는 그늘도 되고
아침마다 이슬에 몸을 씻어
하늘거울에 내 몸 비춰보고 싶다

때론 지나가는 발길에 채여도
그대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 몸 속 길을 내면
어느 날 그대 피곤한 발걸음 내게 얹으며
지친 삶 내려놓고 쉬었다 가게
그대, 나를 밟고
한 세상 건너가시게
(영강)
+ 수석 줍기

단양(丹陽) 이름 모를 냇가에서
당신을 닮은 얼굴을 찾습니다.

돌 더미마다
당신은 거기 있을 거라고
돌멩이 하나하나 헤집으며
당신은 꼭 숨어 있을 거라고
물떼새 날갯짓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광화문 네거리
수많은 사람 중에서
당신을 찾기보다야
이곳이 백 배 낫겠지만

우리는 줍고 버리고
버리고 줍고
종일을 헤매어도
당신은 물떼새 날개 속에 숨어 있어
빈 물소리만 손에 담고 돌아옵니다.
(전영관·시인, 충남 청양 출생)
+ 돌에 대한 기원

어느 병원에 가면
뱃속에서 꺼낸 돌들을
잘 보관해 두었다.

담낭 결석이나 신장결석,
요로결석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 가는 돌들이
모래알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주먹만한 큰 것까지
여러 모양이다.

대흥사 절 집을 찾아가는 길,
일주문 근처에
누군가 수없이 쌓아 놓은 돌들을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구나.

평생을 앓아온
제 가슴 깊은 곳의 돌들을 꺼내어
저리 쌓아 두었구나.

나는 발 밑 구르는 작은 돌멩이 하나 주어
그 위에 놓고
비로소 마음은 세상밖에
둔다.

석장승 앞에 합장을 하듯
바람 한 자락이 그런 나를
머뭇거리다 간다.
(김영천·시인, 1948-)
+ 수석(壽石)

마당 귀에 버려진 작은 돌
햇살 가득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그 속에 지장보살이 보인다

밤마다 들리던 뜻 모를 독경소리
수천 년 씻기어 표정도 지워진

그윽이 번져 나오는 미소
육도(六道)의 중생을 향한
법고(法鼓) 소리 들리고

방안으로 들어서는 낯선 그림자들
삽사리 짖는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줄 서 있던 업인(業因) 때문이었구나
(유창섭·시인, 1944-)
+ 돌

모름지기 시인이란 연민할 것을
연민할 줄 알아야 한다
과장된 엄살과 비명으로 가득 찬
페이지를 덮고
새벽 세 시 어둠이 소복이 쌓인
적막의 거리 걷는다
잠 달아난 눈 침침하다
산다는 일의 수고를 접고
살(肉) 밖으로 아우성치던 피의
욕망을 재우고 지금은 다만,
순한 짐승으로 돌아가 고른 숨소리가
평화로운 내 정다운 이웃들이여,
누구나 저마다의 간절한 사연 없이
함부로 죄를 살았겠는가
머리에 이슬 내리도록 노니다가
발부리에 걸리는
돌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는다
(이재무·시인, 1958-)
+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김남주·시인, 1946-199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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